"함께 일하고 나눠 쓴다"-일 북해도「공동학사」촌장 미야지마 노조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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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치열한 경쟁사회로 세계적으로 이름높은 일본에서「인간다운 삶」을 공동체 체험을 통해 실현시키고 있는 마을이 있어 관심을 끌고있다.
이름하여「함께 일하고 더불어 산다」는 의미의 공동학사가 바로 화제의 현장이다.
나가노(장야), 미야자키(궁기), 동경근처 고다이라(소평), 북해도 등 4지역에 마을을 이루고있으나 북해도 신도쿠(신득)학사가 규모가 가장 크다.
정상적인 인간보다는 몸에 이상이 있다거나 결손가정에서 자란 불량아, 등교거부나 학생운동 등으로 경쟁사회에서 탈락한「사회적 열등생」들이 주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현재 신도쿠 학사에서 함께 생활하며「공동생산, 공동분배, 단체학습」을 실현시키고 있는 일가는 모두 48명.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이 5가구이고 나머지 30명은 12∼20세까지의 청년층으로 5명의 여학생도 끼어있다.
일년의 약 절반을 눈 속에서 생활해야하는 북해도의 척박한 땅에 나름의 유토피아를 실현시켜가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마냥 밝기만 하다.
9일 이방인의 갑작스런 취재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이곳의 촌장격인 미야지마 노조무(궁도 망·47)씨는 공동학사의 창설자인 신이치로(진일랑·71)씨의 장남.
미야지마씨는 아버지가 73년8월 공동체마을을 설립하기로 당초 뜻을 굳혔을 때 이를 강력히 반대했으나 이제는 자신이 이 운동에 앞장서게 됐다며 「이웃사랑과 자노자활」의 그리스도 정신이 밑바탕을 이루고있다고 설립경위를 설명했다.
부인(47)·두 아들과 함께40여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있는 미야지마씨는『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 해야할 일을 찾도록 하는 게 공동체생활의 요체』라면서 15년전 6명으로 신도쿠 마을을 일굴 때는 어려움 투성이었다고 돌이킨다.
땅은 지방자치제(정)에서 무상으로 50가의 광대한 목초지를 빌려줘 해결했으나 집을 짓는 것부터 밭일구기·축사조성·인간관계 조정 등 매일 밤을 뜬눈으로 새야할 정도였다는 것. 미국에서 4년간 축산업을 공부한 경험도 있으나 북해도 지역은 경사가 심해 전혀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했다.
그중 지금도 가슴아픈 것은 전과 7범의 문제아였던 오야꾼(설립당시 20세)이『나는 왜 살아야만 하느냐』며 좌절감을 못 이겨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다.
미야지마씨는 일본사회가 경제대국에 집착한 나머지 경쟁 원리에 충실한 사람만 양산하고있다』고 지적하고『진정 교육받아야할 사람들은 소홀히 하고 있다』며 한국은 이를 본받지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현재 신도쿠 농장은 인공비료를 일절 쓰지 않는 유기농법을 개발, 소비자의 환영을 받고있으며 젖소 70마리, 닭 5백50마리, 돼지 60마리 등으로 규모가 커졌고 금년 1월에 완성한 치즈공장에서 양질의 치즈와 버터를 생산, 북해도 대도시뿐 아니라 동경의 큰 백화점에도 출하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 마을의 한해 예산은 1억엔 정도. 지난해는 공장신설관계로 2천만엔의 적자를 봤으나 올해부터는 자급자족분을 빼고도 흑자가 될 것이라고 기쁜 표정을 짓는다.
수도·가스·전기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잡용계는 의외로 35세의 미국인 마이클씨. 격월로 내는 마을회보에 그는『일본이라는 나라는 때때로 벽을 느끼게 한다』고 외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갖는 이질감을 솔직히 토로. 한국인으로는 유기농법에 관심을 가진 농협관계자가 한 일주일 생활하고 갔을 뿐이라는 미야지마씨는 한국인에게도 문호는 개방돼 있다며 북해도 개발은 사실 상당 부분 강제연행 징용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일본이 과거역사에 좀더 솔직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일본 북해도 오비히로(대광)일 방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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