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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한 많은 50대들의 자화상|김용성의 『도둑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린 세대가 있다. 미군의 군화 발만 쫓던 슈사인 보이, 폐허더미를 뒤적이던 넝마주이, 목숨 내놓고 남의 물건을 야금야금 빼내던 얌생이들.
10대 때 6·25를 만나 모든 것을 잃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숨가쁘게 내달려 오늘을 만들어낸 50대가 그러한 세대다.
총4부 예정으로 최근 1, 2부 두 권으로 출간된 김용성씨(52)의 장편 『도둑일기』(동서문학사간)는 전쟁으로 고아가된 삼형제의 성장과정을 되짚어보며 오늘 우리사회의 중추로 서 있는 50대의 의미를 캐 들어가게 된다.
『우리 50대를 흔히 한글세대, 4·19 혹은 자유세대로 부릅니다. 문화·정치적 측면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6·25폐허 위에서 숨가쁘게 외형적 틀을 세운 세대입니다.
먹을 것, 살집, 사회적 신분상승 등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온 세대입니다. 때문에 주위나 양심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던 무반성의 세대입니다. 부정·부패·범죄 등 사회적 부조리에 무딜 수밖에 없는 우리세대, 아니 현재 우리사회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갖고자 이 작품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도둑 잡는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와 평소 도둑질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던 어머니를 6·25때 잃은 한수·중수·성수 삼형제는 각각 두 살 터울이다.
동생들을 돌봐야할 책임을 느낀 16세의 맏형 한수는 돈벌어 동생들을 학교에 보내려 구두닦이를 하기로 하고 구두통을 만들기 위해 송판과 우단을 훔친다.
자립생존하기 위해선 도둑질도 무방하다는 한수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마약에까지 손을 뻗으며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형의 이 같은 치부수단에 묵시적으로 동의하며 회의하는 둘째 중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로 베트남전쟁에 참전, 부상으로 귀국한다. 귀국 후 신문기자생활을 하던 중수는 유신체제 아래에서 술 취해 국가원수를 모독했다는 소위 「막걸리 보안법」에 걸려든 후 기자도 포기해버리고 소설가로 돌아선다.
구두닦이가 되기 위해 성당에서 우단을 홈치다 신부에게 발각, 감화된 막내 성수는 신부가 된다.
그러나 그는 사제로서 성당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사회개혁운동에도 발벗고 나선다.
작가 김씨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둘째 중수로 하여금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게 함으로써 『도둑일기』는 서술의 구체성을 띠게 된다. 전방 미군부대에서의 구두 닦는 모습이라든가, 막걸리 보안법의 웃지 못할 실체들이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리고 우선 우리들이 살아낸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재미있다.
그러면서 삼형제를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세 부류의 전형적 인물로 설정,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총체적 사회소설로 읽히는 것이 『도둑일기』다. 잘 살기 위해 수단·방법 가릴 것 없다는 독재자 혹은 사업가로서의 한수, 거기에 맞서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힘없는 사제로서의 성수, 그 사이를 오가며 회의하는 비판적 지식층 「먹물」로서의 중수를 내세워 정치·경제·사회·종교 등 사회적 삶을 감싸는 제 문제를 묻고 있는 것이 『도둑일기』다.
김씨는 춥고 한 많았던 50대들의 40년간의 삶과 그들이 지나오고 지탱하고 있는 사회를 단행본 4권 분량으로 압축하려한다. 때문에 길게 늘이기식의 삽화나 일체의 군더더기 사설 등은 들어설 틈이 없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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