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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우등생’ 대형 로펌행 뚜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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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6월은 주요 로펌(법무법인)들이 신규 변호사 채용 경쟁을 벌이는 시즌이다. 특히 올해는 성적이 우수한 예비 법조인들이 로펌 행(行)을 택하는 현상이 보다 뚜렷해지고 있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무풍지대’였던 법조계에 시작될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사법연수원생들이 경기도 일산의 연수원 대형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사법연수원 제공]

사법연수원 2년차인 A씨(26ㆍ여). 현재까지의 연수원 성적이 30위권안에 든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법원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한 대형 로펌으로의 취업을 결정한 상태.

-로펌을 택한 이유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하고 싶어요. 법원은 보수적이고 답답한 것 같고…들어갈 때 성적이 평생 따라간다고 하는데, 저는 제 노력에 따라 평가받았으면 합니다.”

-부모님들은 법원에 가길 바라지 않습니까?

“제가 원하는 일을 하길 바라세요. 오히려 친척들이 더 난리지요. 왜 안정된 길을 버리느냐고요. 하지만 금융 전문 변호사의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로펌에 가면 고생한다고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비겁하게 도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사법연수원 윤성식 교수(판사)는 “연수원 성적으로 보면 법관 임용권은 200등, 검사 임용권은 300등 수준이지만 최근 들어선 성적 우수자의 로펌 취업이 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다만 “연수원 수료 후 군 법무관 임관이 많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로 제시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아직도 성적 우수자 중 다수가 법원이나 검찰로 가긴 하지만 그 등식이 서서히 깨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국내 법률시장의 지형을 뒤바꿔놓을 것이란 전망 속에 내년도 수료 예정자들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실제 “누구 누구는 어떤 로펌으로 간다”거나 “누가 로펌 사람들을 만났다”는 얘기가 요즘 연수원 2년차들의 최대 화제다. 법원과 검찰을 지망하는 연수원생들이 오히려 소외되는 듯한 분위기다. 사시 46회 수석인 홍진영(26ㆍ여)씨는 “법관 외의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도 “적지 않은 연수원 동기들이 로펌으로 갈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고 전한다.

“앞으로는 공적 영역보다 민간이나 시장의 힘이 커지지 않을까요? 검찰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것도 좋겠지만, 시장의 첨단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최근까지도 검사의 꿈을 품어왔던 연수원 2년차 B씨(28). 그도 로펌 쪽으로 마음이 돌아섰다. B씨는 “검사 업무가 형사사건에 국한돼 퇴직 후 좋은 대우를 받기 어렵다는 얘기를 선배들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또 “과거엔 검사가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회적 제약이 늘면서 사건을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데 그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군 법무관으로 입대할 예정인 20대 후반의 한 연수원생 역시 선두권에 있는 수재다. 그도 법원과 로펌 행을 두고 저울질을 계속하고 있다.

“보통 법무관 2, 3년차쯤 됐을 때 로펌 쪽에서 연락이 온다고 해요. 로펌 쪽 매력도 무시할 수가 없어요. 로펌은 5년 정도 근무하면 해외 유학을 보내주거든요. 법원에 가면 지방 근무를 해야 하는 것도 부담입니다. 들어갈 때 페이(보수)가 2, 3배 정도 차이 나고, 10년 지나면 10배 차이가 난다는데….”

변호사 수 100명이 넘는 ‘메이저’ 로펌의 경우 신입 변호사 연봉이 1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히는 것이 ‘법조 일원화’다. 대법원은 경력 변호사의 법관 임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12년엔 전체 임용 법관의 절반을 경력 변호사 가운데 뽑을 계획이다. 그렇다면 굳이 판사로 스타트 라인에 설 필요가 있겠느냐는 얘기다. 그는 “로펌에서 출발해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을 갖춘 다음에 법원으로 U턴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법연수원 김종휘 교수(검사)는 “장래에 대한 불안감이 아무래도 예전과는 다를 것”이라며 “연수원생들이 어떻게 전문성을 갖추고 국제화할지를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한다. 조근호 부원장은 보다 적극적이다. 그는 최근 연수원생들에게 “새로운 세계로 눈을 돌리라”고 제시하고 있다.

“법원에 가더라도 고등 부장(고법 부장판사)까지 갈 가능성은 크지 않아요. 1983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한 동기가 저를 포함해 8명이었는데, 이 중 검사장 된 사람은 저밖에 없습니다. 부모님들은 판ㆍ검사를 원하겠지만 사내(기업) 변호사를 비롯해 다른 쪽도 생각해보라고 권합니다.”

성적 우수자들의 로펌 행은 로펌들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과도 맞물려 있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주요 로펌이 ‘몸집 불리기’에 나서면서 올해 연수원 수료자 중 법무법인 취업자가 271명으로 지난해(172명)보다 57%나 늘었다.

법무법인 세종에서 신규 변호사 채용위원을 맡고 있는 조춘ㆍ김범수 변호사는 “올해 초에 16명 뽑았는데, 내년엔 20~25명 정도 뽑을 예정으로 100명 이상을 접촉하고 있다”고 말한다.

“성적은 기본이고요. 팀제로 움직이는 만큼 인간성이 우선시될 수밖에 없어요. 사전에 대학 동기와 선후배, 연수원 동기들로부터 평판을 들어서 다면평가를 합니다.”

연초부터 성적 우수자를 파악한 뒤 5, 6월에 집중적으로 접촉한다. 한번 대상자로 선정하면 3, 4차례 이상 만난다. 먼저 3~5년차 변호사가 만난 다음 고참 변호사와 파트너 급이 함께 식사를 하거나 간단한 술자리를 갖는 방식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채용위원인 강동욱 변호사는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만나면 준비된 멘트만 주고받는다”며 “술이 한잔 들어가야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성장 환경, 가치관을 분명하게 잡아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법원과 검찰은 “우수 자원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며 “아직은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 판사는 익명을 전제로 “법조계의 변화 가능성에 주목해 신규 법관들이 원하는 전문화를 어떻게 뒷받침해줄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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