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만에 곪아터진 경마부정/마사회 비리(추적 ’92: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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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조교사 잇단자살뒤 수사 흐지부지/폭력배·사설업자 “비웃듯” 다시 기승/구속됐던 8명중 5명은 보석석방
하루 최고 1백억원대의 현금이 움직이는 한국마사회(회장 성용욱)는 「경마=도박」이란 인식에다 운영내막이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채 심심찮게 터져나온 부정 스캔들 때문에 「복마전」이란 오명이 따랐었다.
이같은 불명예에 줄곧 억울한 표정만 짓던 마사회가 9월말 터진 승부조작 사건과 조교사의 잇따른 자살로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동안 기수·조교사 등에 의한 승부조작은 종종 있었지만 관련자가 한두명이 고작인데다 쉬쉬하며 넘어간 것이 대부분이어서 8명이 무더기로 구속된 이번 사건은 한국경마 70년사상 최대사건으로 기록됐다.
뿐만 아니라 사건에 연루된 조교사 두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어 경마장을 둘러싼 비리에 대한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검 특수2부는 경마장의 환부를 깨끗이 도려낼듯한 처음의 기세와는 달리 조교사 자살사건이란 돌발사태에 부닥쳐 흐지부지 수사를 끝내는 한계를 보였다.
이 사건으로 한국마사회는 「공정경마 구현」의 회훈이 무색하게 됐고 2주동안 경마장 문을 닫은 후유증에 이어 금요일 경마가 아예 폐지됐다.
경마장을 향한 발걸음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올 1년간 3백만명 입장에 매출액 1조원 돌파란 당초 목표가 2백85만명 9천2백억원선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임기 14개월을 남겨두고 중도하차한 유승국 전 회장의 바통을 이어 받은 성용욱회장은 일반 직원과 주기단사이의 갈등·불신의 벽을 없애고 분위기 쇄신을 위해 직원결의대회·체육대회를 잇따라 여는 등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흔적을 보였다.
마사회측의 이같은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TV경마장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폭력배·사설 경마업자들은 사건직후 잠시 움츠러드는듯 했으나 다시 기승을 부려 경마팬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현재 마사회는 경마장 주변에 기생하는 폭력배를 4백여명으로 추산하고 내년에 2백90대의 폐쇄회로를 관람대에 설치,이들의 활동을 원천봉쇄할 방침이지만 은밀하면서도 난폭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효과는 미지수다.
마사회는 또 승부조작시비를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한 개인마주제(내년 7월실시)준비를 서둘러 지난 10월말 개인마주 3백71명을 확정했다.
최연홍조교사(51)가 숨진채 발견된 9홀짜리 마사회골프장은 다음날부터 전과 다름없이 골퍼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성 회장이 이 자리에 시민공원을 조성할 계획을 밝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될 전망이다.
사건관련자중 조교사에게 돈을 건네준 혐의로 구속된 전 영동백화점사장 김택씨(34) 등 민간인 5명은 보석 등으로 모두 석방됐고 조교사 이순봉씨(35) 등 마사회직원들은 선고공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건은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지만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준마아파트에 입주하고 있는 직원들중 상당수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형편만 되면 딴곳으로 이사하기를 고대하고 있어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김상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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