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과 경영인(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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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5일 일본 타이어업계에서 탄탄하게 명성을 쌓아왔던 동양고무의 부사장이 느닷없이 달리는 전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그는 전문기술인으로 적지않은 신상품을 개발했고 관리능력도 높이 평가되어 최고경영인의 자리를 눈앞에 둔 시기에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장례식이 치러진뒤 알려진 이야기로는 올들어 내수부진과 수출감퇴까지 겹쳐 회사의 판매수익이 계속 줄어들자 크게 고심한 나머지 결산발표일을 며칠 앞두고 생명을 버렸다는 것이다.
경기침체국면에서의 탈출이 지연될수록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이 이른바 사장업이다. 재무제표에 나타난 성적에 따라 수완과 능력을 평가받는 일본의 경영인들 만큼 강도높은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적다. 비록 오너사장이더라도 쌓인 피로를 미처 풀지 못해 급사하는 경우가 많다. 엔화강세에 따른 불황의 여파가 극심했을 때인 지난 87년에는 대기업의 사장들을 포함한 16명의 경영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기업총수들의 잇단 급서에 자극받은 일본 경영자단체연합은 의학계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스트레스 방지 8개항」을 작성해 회원들에게 돌렸다. 독신생활을 피한다,스케줄을 빡빡하게 짜지 않는다,생활에 변화를 준다,두통 및 위통의 증상을 메모한다,하루 30분이상 운동한다,사물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웃는다,성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우리나라 경영인의 격무는 일본 못지않다. 다각적인 경영전략회의 주재와 출장,고객과의 면담,오너의 심중파악,정치인 등 각종 압력단체와의 적절한 관계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과의 자금줄 연결이다.
최근 한 중소기업 사장의 자살은 대금융관계의 실패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경기침체는 경영인들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련의 시기며 체력소모를 요구한다. 요즘 주요 병원에는 스트레스에 따른 신체의 이상증세를 치료받고 있는 경영인들이 꽤 많다. 우리도 이제 유능한 경영인들이 존경받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성원이 끊이지 않아야 한국기업도 활기가 넘치게 될 것이다.<최철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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