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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우의 과학문화 에세이-이미지에 걸린 과학 <2>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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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18면

새까만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추억일 터이고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놀라운 경험일 것이다. ‘아스팔트 키드’인 나는 예불을 드리러 간 고모의 무릎을 베고 누워 별 소나기를 맞았던 산사의 밤하늘을 잊을 수 없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모두 두 눈으로 들어와 온몸을 헤집고 돌아다녔고 그 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유럽의 작은 시골 마을에 머물면서 쏟아지는 별과 매일 만나는 호사를 누릴 때까지는 다시 만나지 못했던 하늘에 가득한 별들.
별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보면 별에 이름을 붙여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엄마 별, 아빠 별, 오빠 별, 누이 별. TV도 라디오도, 그리고 변변한 읽을거리도 없던 시골에서 모깃불 곁에 누워 눈에 띄는 별에 이름을 주고 친구들 얼굴을 그려보는 것보다 좋은 놀이는 없었을 것이다. 도시의 콘크리트 위에도 어김없이 별은 뜨고 아파트 창 너머 뜬 별에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포개보는 청춘남녀의 연정은 밤에도 뜨겁다.

찰나와 영원을 이어주는 별

우리나라 별자리 그림
별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 어떤 사연을 얽어놓든 별 보는 사람 마음이지만 우리 눈에 쉽게 띄는 많은 별은 이미 공식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기 십상이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하늘의 별을 몇 개씩 묶어 그 형태에 여러 가지 이름을 붙였다. 이름은 사물이나 동물인 경우도 있고 신화 속의 인물들인 경우도 있다. 옛날에는 항해자들의 길잡이였고 지금은 별의 위치를 파악하는 도구인 별자리가 처음에 어떻게 그런 이름들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집대성해 하늘에 새긴 것인지, 아니면 한 사람이나 기관이 만들어 널리 알린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별무리를 묶는 방법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별자리는 ‘천상분야열차지도(天象分野列次之圖)’에 잘 나타나 있다. 현재 덕수궁 궁중유물전시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별자리 그림은 고구려에서 전해 내려온 천문도를 바탕으로 1395년 조선 태조 때 만들어졌다.
최근에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세차운동 값을 바탕으로 정밀하게 계산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 그림의 중앙 부분인 북극 주변은 조선시대 초에 관측되는 별의 위치를 반영하고 있고 그 바깥은 고구려 시대의 하늘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한다. 관측 지점도 중앙 부분은 북위 38도 서울이고, 바깥 부분은 북위 39~40도에 해당하는 옛 고구려 지역이라는 것도 밝혔다.

학자들 중에는 기원전 20세기에서 2세기에 걸쳐 세워진 고인돌 덮개돌에 새겨진 홈의 패턴을 별자리 모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학자들은 선사시대부터 고구려,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우리 천문학과 별자리의 독특한 전통이 있다고 한다. 이 패턴과 고구려 무덤 벽화에 그려진 별자리가 유사하다는 점과 별의 밝기를 크기로 표시한 것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기 어려운 전통이라는 점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돌에 새겨진 홈의 연대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아직까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아 하늘에 뜬 300개 별자리
우리나라 별자리 그림이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별자리 그림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서로의 교류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인 이름과 구조는 유사하다. 28일을 주기로 위치가 달라지는 달의 위치를 기준으로 별자리를 28개로 나누고 28수(宿)라고 불렀고, 다시 일곱 개씩 나누어 네 방위에 배정했다. 각 방위에 있는 별자리의 모습은 그 방향을 지키는 사신(四神)의 모습으로 묶었다.

동쪽은 청룡, 남쪽은 주작, 서쪽은 백호, 북쪽은 현무의 형상이다. 하늘의 중심, 북쪽 하늘엔 3원(垣)이 있다. 옥황상제에 해당하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그 주변은 자미궁, 자미궁의 담을 자미원(紫微垣)이라고 불렀다. 자미원의 별들은 궁을 지키는 장군들이다. 자미원 아래 하늘은 태미원(太微垣)인데 상제와 신하들이 정사를 논의하는 곳이다. 그 바깥은 일반백성들의 영역, 천시원(天市垣)이다. 3원과 28수로 나뉜 동아시아의 하늘에는 300개가 넘는 별자리가 있었다.

우리 별자리에서 수레를 뜻하는 오거성(五車星)이 서양 별자리의 마차부라는 것을 제외하면 뜻이나 이름에서 양쪽 별자리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다. 서양 별자리의 기원은 보통 기원전 30세기의 바빌로니아 지역에 살던 유목민이 남긴 표석에서 찾는다. 이 돌판에는 태양과 행성이 지나는 길목인 황도(黃道)를 따라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천칭 ·전갈 ·궁수 ·염소 ·물병 ·물고기 등의 별자리가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이집트와 그리스의 신화 속 인물과 동물이 더해져 서양 별자리의 바탕이 되었다. 1922년 국제천문연맹은 하늘을 1875년의 밤하늘을 기준으로 88개의 별자리로 나누었다.

별마로 천문대 가는 길
항해자나 천문학자가 아니라고 해도 하늘의 길을 읽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의 후광과 오염 때문에 하늘에서 별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별을 보려면 부러 천문대로 떠나야 한다. 이젠 우리나라에도 공·사설 천문대가 꽤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지만 우리나라 민간 천문대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영월의 별마로 천문대는 좋은 선택 중의 하나다. 시간이 있다면 굽이굽이 절경을 간직한 동강의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거나 단종애사의 현장들을 둘러보면서 천문대로 가도 좋고, 일에 바빠 쫓긴다면 밤 늦게 도착해도 별을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별보기 프로그램은 밤 늦게까지 진행되므로 일과를 끝내고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으로 떠나도 충분하다.

별을 보려고 영월로 떠난 날은 하필이면 저녁에 장대비가 내렸다. 봉래산에서 1년 중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쾌청일수가 192일이나 되고 천문 관측이 가능한 날 수는 230일이나 된다고 하는데 운이 없었다. 이곳에 준비되어 있는 지름 800mm의 주망원경은 빛을 모으는 능력이 사람 눈의 만 배가 넘는데 이것을 통해 하늘을 보면 토성의 고리와 목성의 줄무늬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천문대 지하에 마련된 천체투영관이 비를 헤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른 이들의 어깨를 다독인다. 천체투영관에 준비된, 수평으로 젖혀지는 의자에 누워 계절마다 바뀌는 별자리와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별이 쏟아지던 밤하늘을 다시 만난다.

망원경으로 본다고 해도 별은 그렇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맨눈으로 보는 것보다 조금 더 밝게 보이고, 보이지 않던 별들이 눈에 띄는 정도. 그러기에 별들은 우리와는 너무나 먼 곳에 있다. 그래서 별을 보는 것은 영원을 보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빛은 그 별이 수십 만 년 전에 내보낸 것. 그 위에 마음속의 그림을 그려보는 것은 찰나를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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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학역사학환경학을 공부한 주일우씨는 학문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에 관심이 많은 과학평론가이자 문화공간 ‘사이’의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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