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 유권자는 달라졌는데…/최훈 특별취재반(대선교차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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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부산인지 광주인지 잘 모르겠다.』
김대중 민주당후보의 부산유세가 벌어진 6일 오후 비는 오지 않았지만 궂은 날씨에 구덕운동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이 「김대중」을 외쳐대자 당관계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오후 3시30분 김대중후보가 운동장에 도착하자 미처 스탠드에 입장하지 못한 청중들이 김 후보의 뒤를 따라 출입구로 마구 밀려들기 시작했다.
당유세준비위측은 당초 취약지인 이곳의 청중수가 신통치 않을 것으로 판단,스탠드(정원 3만5천명)만 사용허가를 냈으나 청중들이 물밀듯 밀려들자 운동장관리소측에 「그라운드 잔디가 훼손되면 전액보상」을 전제로 운동장사용허가를 뒤늦게 받아냈다.
연설에 나선 김 후보는 신명이 난듯 『오늘은 여러분과 더불어 동서가 화합하고,김대중과 이기택이 하나되는 날』이라며 동서화합을 유난히 강조,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87년 투석전(대구·광주·전주·군산·순천)이 난무하던 상황과는 정반대의 높은 열기를 보인 이날 유세는 민자당 김영삼후보의 광주집회가 평온하게 치러진데 잇따른 것이어서 「지역감정 해소」라는 기대를 부풀게 했다.
그러나 이같은 외관상의 열기는 침묵하는 청중이 대부분이었던 김영삼후보의 광주유세와는 너무 달라 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스탠드와 운동장을 가득메운 청중들이 일제히 한 모습으로 수기와 피킷을 흔들면서 한 목소리로 연설에 응답하는가 하면 「김대중」과 「이기택」을 경쟁적으로 연호했기 때문이다.
또한 스탠드 곳곳에는 「민주정부 수립」「민주당은 전교조 인정,민자당은 온건교조 탄압」「노동자가 똘똘 뭉쳐 빠짐없이 투표하자」는 국민회의·전교조 명의의 플래카드도 다수 발견돼 전국연합이 본격적으로 유세를 지원하는 느낌을 주었다.
3당중 청중 동원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민주당이 김영삼후보의 광주유세와 마찬가지로 이날 유세에서는 지역감정 해소 차원을 넘어 적지않게 청중을 동원했음을 알게 했다.
이렇게 보면 취약지에서의 대규모 청중동원 및 불상사 없는 대회를 지역감정 해소의 잣대로 보는 시각엔 분명 허점이 있다.
아직은 후보들이 지역유권자들의 가슴속에 진정한 지역감정 종식의 「실천의지」를 심어주는 것이 역부족일지 모른다.
영·호남유권자들이 최근 보여준 다소 성숙하고 달라진 자세는 마땅히 밀알로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부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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