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련 업무 경험 없는 미국통 '무리하지 않는' 외교 이어받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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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신임 주한 일본대사에 시게이에 도시노리(重家俊範.62.사진) 외무성 오키나와 담당 대사가 내정됐다. <본지 6월 20일자 8면>

2005년 8월부터 주한 대사로 재임 중인 오시마 쇼타로(大島正太郞) 현 대사는 8월께 시게이에 내정자와 교대할 예정이다.

시게이에 내정자는 1969년 외무성에 들어간 뒤 주로 미국과 중동.아프리카를 담당해 왔다. 아시아 근무는 서기관 시절 말레이시아 근무가 유일하다. 북미국 안전보장과장, 유엔대표부 공사, 주 미국 특명전권공사를 지내면서 미 행정부 내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또 지난해 3월부터 오키나와 담당 대사를 맡으면서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주일 미군의 재배치 문제를 잡음없이 처리하는 가교 역할도 했다.

일 외무성 관계자들은 20일 "시게이에 내정자는 온화하고 신사적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며 "그런 점에서 현 오시마 대사의 '무리하지 않는' 외교노선이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시게이에 내정자가 현 오시마 대사나 그 전임자인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현 주 독일대사와 달리 외무심의관(차관보급)을 거치지 않은 국장급 인사인 데다 한국 관련 업무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외의 인물"이란 지적도 있다. 외교통상부 제1차관을 지낸 유명환 주일 한국대사와도 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일 총리 관저의 고위 관계자는 "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핵심 측근인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사무차관의 뜻이 담긴 인사"라고 전했다.

최근 외무성 중국과장으로 중국과 무관한 '비 차이나스쿨' 인사를 30여 년 만에 등용한 것이나 한국 문외한인 시게이에 오키나와 담당 대사를 주한 대사로 결정한 것 모두가 이 지역을 야치 차관의 직할체제로 두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한 일본 대사의 교체로 인한 한.일 관계의 변화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시게이에 내정자는 중동.아프리카 국장으로 재임하던 2002년 정치사건에 휘말려 한직인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주임연구원으로 밀려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외무성에 강한 영향력을 갖던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자민당 의원이 시게이에 국장과 접촉해 일본의 아프가니스탄 복구지원사업에서 특정 비정부기구(NGO)를 배제했던 게 문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1년4개월 뒤 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로 일선에 복귀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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