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하구려(下句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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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국과 중국은 예부터 지금까지 깊은 인연의 나라다. 이 중엔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있다. 나쁜 기억 중 하나가 한반도에 기반을 둔 고구려.백제.신라 등과 중국 역대 왕조와의 숱한 전쟁이다.

특히 고구려와 중국 역대 왕조의 투쟁과 협력은 서로의 흥망성쇠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수(隨)나라처럼 고구려를 무시하다 멸망을 자초한 중국의 왕조도 한 두개가 아니었고, 서로 선린의 길을 가 공존번영의 시기를 구축한 왕조도 많았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강탈하려는 국가적 차원의 책동을 자행하는 요즘,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인물은 왕망(王莽)이다. 그는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신(新.AD 8~23)을 건설한 인물로 주(周)나라 시대를 모범으로 삼고 이때의 사회상을 재건하고자 했다. 때문에 그의 개혁전범은 주례(周禮)였다.

그는 이 책의 지침에 따라 호족의 힘을 억누른다며 밭을 공유화하고 노예매매를 금지시켰다. 또 주변국과 공존하기보다 그들을 얕보고 깎아내리는 정책을 썼다. 그 대표적인 게 역대 중국왕조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 흉노와 고구려에 대한 하대책이었다. 그는 그 스스로의 발언은 물론이고, 국가문서를 통해서도 흉노를 항노(降奴)로,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麗)로 부르도록 했다. 중국이 국가적으로 문헌과 외교발언 등을 통해 한반도 왕조에 대한 조작과 모욕을 주려 했던 시도는 이처럼 역사가 오래됐다.

하지만 왕망이 하구려.항노 등으로 부른다고 해서 이들의 역사가 하구려가 되고 항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중심적 아집에 가득찬 왕망의 정책은 주변국과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내정에서도 주나라 시대 재현의 꿈은 점점 불가능한 일이 되어갔다. 특히 밭의 공유화와 노예매매의 금지 등은 재정에 심각한 압박을 가져왔다. 재정압박을 타개하기 위해 왕망은 소금.술.철의 전매제를 실시했다. 특히 술의 판매를 독려하기 위한 각종 정책과 마케팅 아이디어를 강구했다. 이때 만들어낸 말이 '술은 백약의 우두머리'라는 문구였다. 이처럼 이 말의 기원은 술 예찬과는 상관이 없다. 이는 주나라 시대의 재현을 꿈꾸며 세금을 많이 거두어 들이고 주변국을 하대하려던 왕망의 허망한 꿈의 결과물일 뿐이다. 고구려사를 빼앗으려는 중국의 망상도 왕망의 예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석환 논설위원 한국과 중국은 예부터 지금까지 깊은 인연의 나라다. 이 중엔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있다. 나쁜 기억 중 하나가 한반도에 기반을 둔 고구려.백제.신라 등과 중국 역대 왕조와의 숱한 전쟁이다.

특히 고구려와 중국 역대 왕조의 투쟁과 협력은 서로의 흥망성쇠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수(隨)나라처럼 고구려를 무시하다 멸망을 자초한 중국의 왕조도 한 두개가 아니었고, 서로 선린의 길을 가 공존번영의 시기를 구축한 왕조도 많았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강탈하려는 국가적 차원의 책동을 자행하는 요즘,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인물은 왕망(王莽)이다. 그는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신(新.AD 8~23)을 건설한 인물로 주(周)나라 시대를 모범으로 삼고 이때의 사회상을 재건하고자 했다. 때문에 그의 개혁전범은 주례(周禮)였다.

그는 이 책의 지침에 따라 호족의 힘을 억누른다며 밭을 공유화하고 노예매매를 금지시켰다. 또 주변국과 공존하기보다 그들을 얕보고 깎아내리는 정책을 썼다. 그 대표적인 게 역대 중국왕조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 흉노와 고구려에 대한 하대책이었다. 그는 그 스스로의 발언은 물론이고, 국가문서를 통해서도 흉노를 항노(降奴)로, 고구려를 하구려(下句麗)로 부르도록 했다. 중국이 국가적으로 문헌과 외교발언 등을 통해 한반도 왕조에 대한 조작과 모욕을 주려 했던 시도는 이처럼 역사가 오래됐다.

하지만 왕망이 하구려.항노 등으로 부른다고 해서 이들의 역사가 하구려가 되고 항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중심적 아집에 가득찬 왕망의 정책은 주변국과 거의 모든 부분에서 갈등을 일으켰다.

내정에서도 주나라 시대 재현의 꿈은 점점 불가능한 일이 되어갔다. 특히 밭의 공유화와 노예매매의 금지 등은 재정에 심각한 압박을 가져왔다. 재정압박을 타개하기 위해 왕망은 소금.술.철의 전매제를 실시했다. 특히 술의 판매를 독려하기 위한 각종 정책과 마케팅 아이디어를 강구했다. 이때 만들어낸 말이 '술은 백약의 우두머리'라는 문구였다. 이처럼 이 말의 기원은 술 예찬과는 상관이 없다. 이는 주나라 시대의 재현을 꿈꾸며 세금을 많이 거두어 들이고 주변국을 하대하려던 왕망의 허망한 꿈의 결과물일 뿐이다. 고구려사를 빼앗으려는 중국의 망상도 왕망의 예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