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적용 공정 아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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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형사지법 합의22부는 승용차를 몰고 가다 전치3주의 상처를 입힌 뒤 달아난 혐의로 기소된 청와대 경호 실 직원 임 모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뺑소니 사범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선고유예판결을 내렸다.
또 충북 음성군 금석 1리에서 경기경찰청 보안분실 소속 이모 순경이 차를 돌리기 위해 중앙선을 침범하는 바람에 이를 피하려던 오토바이운전자 이 모씨를 숨지게 한 사건도 교통사고 처리특례법 상 예외 8개 항목에 저촉되어 구속수사가 마땅한데 지난달 27일 검찰이 불구속 수사하도록 재 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사건은 피고인이 대통령 경호 실 직원으로 성실히 근무해 왔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수했다는 점을 고려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고, 또 한 사건은 수배자 검거를 위한 공무수행 중이라는 점을 참작해서 불구속 수사를 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여기서 재판부나 검찰에 대해 법률적 당부를 따지거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정상참작을 한 예대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쥐꼬리만한 월급이나 몇 푼 안 되는 장사수익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일반서민들이 행여 법을 어겼을 때도 이렇게 정중하고 세심한 배려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뛰는 물가에 오염된 물 걱정을 하면서도 일반서민들이『그래도 우리사회는 평등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법 적용, 특히 형사법적용의 엄격성과 평등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있는 자나 없는 자나 교통법규를 위반했으면 똑같은 벌금을 내야하고 남에게 피해를 줬으면 다 같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거기에 불평등과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이다.
민주사회는 그런 믿음의 터전 위에서만 건설되고 발전되며 그 신뢰의 기반이 허물어져 버리면 이 당에 자유·평등·민주·정의는 찾을 데 없는 것이다.
이길언<대구시 서구 비산 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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