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껍데기만 왔다”/KAL007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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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비행기록」장치 내부 비어있어/조종실 녹음상태 불량… 조작 가능성
옐친 러시아대통령 방한때 한국측에 인계한 KAL007기 블랙박스에 비행경로기록장치(DFDR)의 테이프가 포함돼 있지 않으며 조종실 음성녹음장치(CVR)도 녹음상태가 극히 불량하고 거꾸로 녹음돼 있는 등 원본을 훼손하거나 조작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교통부는 지난 19일 옐친대통령이 노태우대통령에게 직접 건네준 KAL007기의 블랙박스를 조사한 결과 인계당시 DFDR와 CVR의 본체가 잠금장치로 닫혀있어 특수도구를 이용,개봉했으나 내부가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교통부조사팀은 DFDR·CVR 본체와 분리된 테이프 4개를 대한항공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분석했으나 4개의 테이프중 숫자로 출력되는 비행경로기록장치의 테이프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조종실 녹음장치도 조종실 내부의 소리라고는 볼 수 없는 잡음으로 인해 대화내용을 들을 수 없었고,그중 2개 테이프는 녹음상태를 역으로 회전시켜야 정상작동되는 등 녹음이 거꾸로 돼있어 테이프 자체가 사고당시 KAL기에 장치돼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교통부는 당초 러시아측이 인계한 블랙박스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의뢰해 KAL기의 항로이탈 원인을 조사하려 했으나 러시아측이 건네준 자료의 신빙성을 믿을 수 없고 사고조사의 핵심이 되는 비행경로기록장치 테이프가 포함돼 있지 않아 일단 주모스크바 한국대사관을 통해 러시아측에 경위를 알아보도록 훈령을 보냈다.
정부관계자는 『옐친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비행기록장치 테이프를 포함하지 않고 한국측에 블랙박스를 인계했다고는 보지 않고 있다』며 『이 테이프가 없는 것은 사고직후 구소련측이 파기한 것인지,아니면 실수에 의한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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