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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측법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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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의 불교사상은 인도나 중국의 불교에 비해 분명한 차별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불교학자들은 말한다. 인도의 불교는 「원천불교」,중국의 불교는 「종파불교」라고 한다면 한국의 불교는 「회통불교」라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회통불교란 종파불교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선교 양종을 구분없이 한데 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불교는 다른 나라에 비해 독특한 빛깔과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 가운데서 특이한 존재가 한분 있다. 신라의 고승 원측법사다.
그는 신라의 왕손으로 진평왕 35년(613년) 경주 모량에서 태어나 세살의 어린나이로 출가해 15세때 당에 유학,83세에 입적할때까지 일생을 중국에 머무르면서 수많은 경전을 번역하는 한편 유식학에 일가를 이룬 당대 최고의 학승이었다. 따라서 원측은 우리나라의 승려이면서도 중국과 인도·일본 등에 더 알려진 국제적 인물이었다.
원측이 당에 유학한 해에 중국의 대학승인 현장법사는 28세의 나이로 인도에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17년뒤 현장이 인도의 유식학 등 새로운 학문을 들여왔지만 원측은 이미 독자적으로 구유식학을 연구,학문의 기초를 완전히 닦고 있었다.
그에게는 타고난 총기와 함께 어학에 대한 천부적 재능이 있어 티베트어·범어 등 6개국어에 능통했다. 그래서 현장이 인도에서 돌아와 『반야심경』을 번역했을때 그 오역을 지적한 일도 있다.
이런 일화가 전한다. 현장이 인도에서 배운 유식론을 누구보다 먼저 제자인 자은과 규기에게 강의할때 원측은 몰래 그 강의를 엿듣고 강의가 끝날 무렵 서명사에서 규기보다 먼저 유식론을 강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화는 유식론을 해석하는데 있어 원측과 규기의 학문적 입장이 서로 달라 그에 대한 시기와 견제때문에 꾸며낸 얘기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번에 삼성물산과 연변대학이 공동작업으로 발굴한 원측의 『해심밀경소』는 그가 스승인 현장과 유식론에 대한 해석을 전혀 달리한 역저. 따라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원효의 『대승기신론소』와 함께 세계적인 불교저작중의 하나다.
이런 귀중한 자료가 한 기업체의 숨은 노력속에 발견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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