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경제현안 왜 미루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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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권의 임기만료가 임박해질수록 경제운용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는 한층 더 적극적이고 치밀해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경제운용에 급격한 변화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만큼 정부는 다급하고도 중요한 경제현안들을 다룸에 있어 느슨한 자세를 보이거나 어려운 결정을 뒤로 미루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3·4분기의 유례없는 저성장에 관한 최각규부총리의 설명에서 바로 그같은 자세의 일단을 발견하게 된다. 최 부총리는 경기문제와 관련,내년부터 건축규제를 풀겠다고 밝혔고 쌀개방 문제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모두 내년에 가서 보자는 식이다. 왜 당장 착수하면 안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빠져있다.
내년으로 넘겨지는 경제현안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이용만재무장관은 금리인하 방침을 연거푸 밝혔지만 통화정책의 집행기관인 한은은 거꾸로 시중 통화량을 죄는 바람에 시중금리의 상승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금리문제의 해결도 결국 내년으로 넘어가고 말 것이 뻔하다. 이로 인한 업계의 자금계획 혼선은 그만큼 장기화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업계에서는 정부의 임금·노사정책 추이를 몹시 궁금해하고 있다. 노사간의 자율결정에 맡길 것인가,아니면 정부의 가이드 라인 설정과 강력한 개입이 계속될 것인가. 매우 미묘하고 민감한 문제이므로 정부에선 차기정부에 넘기자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경제안정 기조의 유지라는 확고한 입장속에서도 정부는 지난 10월 설비투자 촉진을 위해 5조원에 이르는 각종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 지금 성의있는 정부라면 과연 은행창구에서 그 자금들이 제대로 나가고 있는지,그리고 당초 의도했던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필요한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옳았을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정부는 이같은 문제들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내년도 경제운용 계획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기업을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새해의 경제활동 계획을 짜는데 있어 그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할뿐만 아니라 정부안의 이견들을 조정·통합하는데 있어서도 그것은 매우 긴요한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거시경제 지표들이 포함돼야 하겠지만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의 타결과 클린턴 미국정부의 출범 등 통상환경 급변에 대한 대응책들도 아울러 제시돼야 할 것이다.
일부 여론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할일은 해야 한다」면서 영종도 신공항 건설과 같은 대형사업을 강행한 정부가 산적한 경제현안들을 뒤로 미룬다는 것은 온당하지도 않고 바람직 하지도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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