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군대서 잘 지내니? 얼마나 힘이 들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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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 후면 한국전쟁 기념일이다. 57년전,이 땅에서는 동족 상잔의 엄청난 비극이 있었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코리아. 이 땅에서 '건장한 사내아이'로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인 한편 ‘비극의 출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군대에 현역병으로 입대할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연예인들의 병역비리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맏아들을 군대에 보낸 한 ‘강남 어머니’가 직접 쓴 글들을 모은『 아들을 보내고 』(권현옥 지음/쌤앤파커스 펴냄/1만원)가 나왔다.
“군에 아들을 보낸 모든 어미는 첫사랑을 떠나보낸 사춘기 소녀처럼 가슴앓이를 한다!” 딸 하나만 둔 기자도 공감하는 저자의 말이다. 따라서 아들을 군대에 보낸 이 땅의 70만 어머니들이야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꿈결에도 듣고 싶던 아들 목소리”
장면1) 아들이 입대한 날(2006년 10월 10일). 아들 키가 184cm를 넘는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폼 나게 안으려고 팔을 벌렸는 데 닿지 않는다. 어정쩡하게 목과 어깨 근처에 팔이 머문다.
매달린 것도, 안은 것도 아닌 우스꽝스런 모양새를 연출하고 말았다. …(중략) 멋지게 포옹하며 배웅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장면2) “지금부터 제가 아드님을 바꿔 드릴 텐데요. 아이가 마음 약해질 수 있으니 절대로 우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기무사 부관이 아들을 바꿔준다. 아들이 맞다. “엄마아!” 이토록 간절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괜찮니, 어떠니, 잘 지내니…….”
아들이 대답할 수 없을 여러 질문을 쏟아내놓는다.
“응, 엄마. 재미있어요.”
재미있다니! 이건 분명 옆에 있는 사람을 의식해서 한 말일 것이다. 군대가 재미있다는 말을 누가 믿을까. 얼마나 힘이 들꼬……. 그러고 나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더 나눴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키가 크고 건장한 아들이 마침내 울먹였고, 아이 마음 약해지지 않게 울지 말라던 부관의 충고대로 울지 않은 쪽은 나였다.
내 아들의 눈에서 눈물이 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인들 못할까. 더한 것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은 결국 어미를, 휴대전화 슬라이드를 닫자마자 대성통곡하게 만들었다. “엄마,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 만날 때까지.” “그래, 아프지 않을게.” 아프지도,울지도 말아야 한다. 아들을 군대 보낸 어미는 건강해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아들을 둔 어미인 것이다…….
◆책이 나오기까지
어머니는 맏아들이 입영통지서를 받은 뒤부터 입대할 때까지 거의 1년 간 자신의 심정을 매일 일기 형식으로 썼다. 그리고 그 내용을 자신의 중앙일보 블로그(진주의 집·blog.joins.com/pearl39)에 올렸다. 그러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경을 간직한 어머니들을 비롯,애인이나 동생ㆍ친구를 군에 보낸 많은 이들의 격려와 공감의 댓글들이 연일 쏟아지면서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저자는 1960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여고(수석 졸업)를 거쳐 서울대 약학과를 졸업했다. 어려서부터 좋아한 ‘글 쓰는 직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마흔에 뒤늦게 문학 공부를 시작,서울디지털대 전임교수 및 같은 대학 문예창작학부 초대 학부장을 역임했다. 단편소설 ‘불란서 약국’으로 계간『문학나무 』신인작품상을 받았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프리미엄 최준호 기자 choijh@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자료 제공=쌤앤파커스(02-324-0652)

추천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옛 기억을 더듬어갔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들을 군에 보내는 일. 대한민국의 어머니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야 하는 일이지만, 그 앞에서 눈물을 참고 태연해지기란 쉽지 않다.
덜 정제된 듯하지만, 오히려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여물어가는 과정을 잘 드러내주는 솔직담백한 글들은, 독자들을 웃게 만들기도 하고 또 울게 만들기도 한다. 윤후명(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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