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토론 못할 이유뭔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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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KBS 주선으로 23일 열린 민자·민주·국민당 실무대표회의는 대통령후보 TV토론의 개최원칙과 토론방식에는 합의했으나 토론참여 범위에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자당측이 후보등록자 전원을 토론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민주·국민당 대표는 3당후보만의 토론을 주장해 합의를 보지 못한 것이다. 민주·국민당측이 참여의 문호개방에 합의만 하면 TV토론은 성사되겠지만 여기에는 각 당에 숨겨진 의도와 민감한 이해득실의 계산이 깔려 있어 그 전망이 밝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당이나 후보간의 이해득실과는 상관없이 후보들의 TV토론에 대한 객관적인 필요성과 유권자들의 요구는 높아가고 있다. 우선 TV토론은 유권자들이 안방에 앉아서 후보들의 정견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추위를 무릅쓰고 유세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또 대규모 군중집회가 가져올 선동적인 분위기나 원색적인 상호비방 또는 지역감정의 자극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일방적으로 남발되는 후보들의 공약에 대해 차분하게 그 타당성과 실현성 여부를 직접 따져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 등 후보들의 TV토론은 매우 유용한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다. 이제 각 가정에 TV수상기가 없는 곳이 없을만큼 대중화된 매스미디어가 대통령선거라는 국가적 중대행사에 효율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따라서 후보들은 TV토론 참여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갖는게 좋겠다. 시청자앞에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보이고 경륜과 사상과 포부,그리고 국가경영의 청사진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물론 TV매체는 후보의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외면으로 나타나는 언변과 제스처,외모 따위에 유권자들의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함정이 있다. 미국에서도 토론의 내용보다 말하는 태도,이성적 판단보다 감각적 이미지가 더 작용하는 약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에게 후보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자료를 제공하는데 이보다 유용한 방법을 찾기는 어렵다.
후보들의 방송연설이나 방송광고와는 달리 TV토론은 어디까지나 방송사가 기획하고 주관하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 결정이나 진행방식은 방송사 제작진이 정할 사항이다. 후보들의 TV토론에 관한 대통령선거법 규정과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매우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요소가 없지 않지만 실정법이므로 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법규와 해석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안에서는 토론자의 참여범위나 진행방식은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번에 TV토론이 성사되어 선거운동방식에 새로운 기풍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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