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장의 연예인과 선관위 고민/이재학 정치부기자(유세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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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고민하고 있다. 각 정당이 주최하는 연설회에서 연예인이 대거 등장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이냐는 문제 때문이다.
중앙선관위는 이달초 이른바 각 정당의 이벤트행사가 선거법에 저촉되는지를 실무차원에서 검토한 바 있다. 당시 선관위는 연예인을 초청,시민위안을 명목으로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일반유권자를 대상으로 영화상영·공연·콩쿠르·체육대회 등 모든 행사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된다고 허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민주당이 임시전당대회의 전야제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행사를 연 것은 선거법에 사실상 저촉된다고 할 수 있다며 민주당측에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벤트행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후보들의 공식 연설회에 앞서 연예인들이 등장,미리 유세 분위기를 선도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현행 대통령선거법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 조항은 단 하나다.
연설회장에서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선전하는 내용의 노래를 하거나 이를 확성장치로 방송할 수 있다는 내용을 규정한 47조 10항이다.
선관위가 이 조항에 근거,최근의 유세장에서 연예인이 등장하는 현상을 보는 눈이 이렇다.
연예인이라고 당원이 되거나 선거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유세장에서는 누구든 「지지하는」노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연예인이 나와 노래한다는데 원칙적인 문제는 없다. 그 「노래」를 하기 위한 가무,즉 춤과 반주는 통상적인 범주에서 허용된다. 치어걸이나 밴드의 등장도 문제삼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연설원으로 등록하지 않고 노래 이외에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한다든가 ▲유권자들의 특정후보 지지를 유도하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입장이다.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반드시 「지지하는」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예를 들어 조금이라도 가사를 바꾸든가 해야지 유행가를 있는 그대로 부른다면 엄격히 말해 선거법에 위반된다. 선관위는 일부 현장에서의 판단을 돕기 위해 곧 연예인의 등장 등 유세장 및 선거운동 과정에 대한 구체적 단속지침을 다시 작성,일선 선관위에 보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선관위는 연예인들의 등장 그 자체를 고민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정작 각 정당 연설회장에서 이루어지는 연예인들의 공연이 1시간씩인데 비해 후보의 연설은 20여분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이 정강·정책내용의 진지한 전달이라는 연설회 본래의 목적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선거법상에는 그런 공연과 연설의 형평 및 균형에 대한 제한규정이 없어 선관위가 계도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이제 선거는 시작됐고 선거법을 고칠 수 있는 시간도 없다. 후보와 정당 스스로 연예인의 지나친 활용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를 자문하고 가능한한 자제하려는 노력만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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