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섭위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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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4기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 전」도「제2기 응씨배」처럼 4강으로 압축되었다. 11월4일 서울힐튼호텔에서 열린 준준결승전에서 조훈현9단·조치훈 9단·이창호 6단·녜웨이핑(섭위평)9단이 4강에 올랐다.
준준결승의 대진표는 조훈현 9단-마샤오춘(마효춘)9단, 조치훈 9단-김수장 8단, 이창호 6단-유창혁5단, 섭위평 9단-린하이펑(임해봉)9단.
이들의 대국내용을 살펴보면 마9단은 백으로 곧잘 버티다가 중방이후에 무리로 자멸했으며, 김8단도 역시 비슷한 경우였고, 유5단은 백으로 투혼을 불살라 파란만장한 싸움바둑 끝에 대마가 함몰했다.
한편 임 9단과 섭 9단의 대국은 가장 팽팽하게 어울려 시종일관 검토실의 관심이 집중된 한판이었다. 중방에 섭 9단의 백넉점 요석이 떨어져 우려를 샀으나 오송생 9단과 뤄젠원(나건문)중국 팀 단장(7단)은『결코 백이 나쁘지 않다』는「외로운 주장」을 펼쳐 이채. 과연 섭9단은 두 사람의 주장을 입증시켜 주기라도 하듯 집요하고 눈부신 끝내기로 반면 5집 이상으로 차이를 벌려 임9단의 강 서를 받아 냈다.
이날의 네 대국에서 집 백자가 승리한 유일한 케이스이기도 했지만 섭 9단의 끝내기 솜씨는 단연 압권이었다. 검토실의 한국기사들 거의 모두가 임9단의 우세를 단언하는 상황에서부터 흡사 누에가 뽕잎 갉아먹듯 야금야금 흑집을 침식해 들어감으로써 검토 실을 감탄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것.
국후 오9단과 나 단장은『임-섭 대결은 초창기에는 운이 연전연패였으나 최근에는 거꾸로 연전연승이다. 두 사람간의 통산전적은 5승5패 정도』라고 필자에게 귀띔하여 한국기원의 기록을 찾아보니 섭이 6승5패로 앞서 있다. 5승5패든, 6승5패든 간에 외국기사들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연구하기로 소문난 중국기사들이 임9단(그들의 동포이긴 하지만)에 대해서도 연구를 끝낸 모양인가.
어쨌거나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난조를 보이던 섭9단의 바둑이 되살아나는 인상이어서 주목된다.『운9단은 형세판단이 빨라 바둑을 알기 쉽게 둔다』는 김인9단의 말처럼 공연히 복잡하게 두는 바둑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간단 명료」야 말로 참다운 고수의 면모다.
8강 전에 초대된 일본기원의 한 관계자는『한국인 5명에 중국인 3명으로 일본인이 한사람도 없어 쓸쓸하다』고 탄식했는데 이제 한국인 3명(국내 파2+해외파 1)에 중국인 1명만 남은 셈. 그래도 한국인 일색보다는 외국인 기사가 한사람쯤 끼여 있어 오히려 구색이 맞는다 할까.
4강의 대진표는 조-이, 조-섭 이어서 또 한번 화제다. 그것은 사제가 결승진출을 다투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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