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불신 빨리 수습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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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자살사건을 계기로 이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거액의 가짜 CD가 시중에 유통되어 왔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과연 그 총액이 얼마나 되는지도 어림짐작할 수 없는게 현 단계다. 뿐만 아니라 가짜 CD에 이어 대기업 명의의 거액 위조 약속어음까지 발견돼 이제는 현찰이외엔 어떤 유가증권도 믿을 수 없다는 심리가 일반시민들에게까지 확산될 판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금융질서와 경제신뢰 관계를 밑뿌리부터 뒤흔들어 놓는 중대한 사태다. 이를 빠른 시일 안에 수습하지 못한다면 현찰 이외엔 모든 금융거래가 마비되는 금융 「공황」이 빚어질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그러나 이제까지 이에 대한 당국의 대처는 어떤 일인지 너무도 소극적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탓인지,아니면 정권 말기의 무사안일에 빠진 탓인지 그저 단순한 은행의 창구 사고를 다루는듯한 인상이다.
금융당국도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지만 사건 수사를 맡은 경찰과 검찰의 자세도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경찰은 상업은행 명동지점장의 사인이 타살이 아니라는 것만을 입증하고는 손을 털어버리려는 태도였고,검찰 역시 고위 관계자가 「잃어버린 돈을 찾아주는 일까지 검찰이 할 수는 없는게 아니냐」고 말하는 등 이번 사건을 남의 일 보듯 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20일 정구영검찰총장이 뒤늦게나마 전면수사를 지시해 분위기가 빠뀐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상업은행 사건에 관련된 8백56억원과 시중에 풀려있는 가짜 CD의 행방을 찾아내고 도피중인 위조범들을 빠른 시일안에 검거해 전모를 밝혀내야 한다.
검찰이 전면수사 대상에 넣어야 할 것은 가짜 CD만이 아니다. 위조 약속어음에 대해서도 함께 수사를 벌어야 한다. 재벌명의의 약속어음까지 가짜가 나돌고 있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약속어음은 CD와는 비할 수 없이 널리 유통되는 유가증권이기 때문에 위조 규모에 따라서는 오히려 CD보다 파문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검찰·경찰뿐 아니라 금융당국도 사태의 중대성을 깊이 인식하여 검찰·경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자체적인 긴급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내년부터는 시중은행 공동 규격의 CD를 발행하고 인쇄를 조폐공사에 맡길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내년까지 기다리고 있을 겨를이 없다.
이미 CD유통이 사실상 전면 중단됨으로해서 금리가 다시 오르는 등 경제에 악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수사당국의 수사 결과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응급대책이라도 마련해 CD에 대한 신뢰를 하루빨리 회복시켜야 한다. 수사당국과 금융당국의 적극적이고 합심된 노력만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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