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뿌리 흔들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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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국 축구의 사령탑이라 할 대한 축구협회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올해 말로 임기가 끝나는 김우중 축구협회장의 퇴진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가운데 무주공산이 된 축구협회가 방향타 없이 표류하고 있다. 집행부는 이사들대로 사분오열,「포스트 김회장」체제에 대비한 자리 안주에 급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올 들어 연령별 주니어 축구 대표팀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잇따라 연패하는가 하면 프로그라운드는 연일 심판판정 시비로 얼룩져 말썽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렇듯 한국축구는 올 시즌 프로·아마 할 것 없이 최악의 한해를 보내면서「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재의 현장은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 14일로 마감된 93프로 신인 드래프트 신청창구에는 당초 우려한 대로 올림픽 대표 출신의 정재권(한양대) 노정윤(고려대)등 걸출한 유망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외면하는 사태가 빚어졌음에도 협회는 「강 건너 불 보듯」수수방관하고 있으며, 94년 미국 월드컵 축구 아시아예선전이 코앞에 임박했음에도 협회는 훈련일정을 잡기는커녕 주전 멤버조차 확정하지 못하고있는 딱한 실정이다.
특히 지난14일 프로축구 정규리그 일화-대우 경기에서 빚어진 관중 소요사태와 관련, 축구 협회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17일 전격적으로 일화 박종환감독을 징계(6개월 출장정지·벌금 1백만원)한 것은 이 같은 협회행정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박 감독에 대한 상벌 위원회의 의결이 하루 전날인 16일 오후 이뤄졌음에도 불구, 종전과는 달리 서둘러 상임이사회를 열어 전격적으로 처리한 것이나 장장 10개월간에 걸친 페넌트레이스를 벌여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할 18일 일화-포철전(포항)을 하루 앞둔 시점을 택해 취해진 것도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다는 게 축구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박 감독의 경솔한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 같은 결정은 협회이사들 사이에 내재돼있는 박 감독에 대한 거부감정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실제로 박 감독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그라운드 폭력」시비와 관련, 협회로부터 징계를 받았었고 그때마다 개전의 정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강한 반발을 보여 적잖은 미움을 사왔었다.
이번 박 감독에 대한 축구협회의 서두른 징계 결정은 가뜩이나 위축돼있는 프로축구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일 수밖에 없으며 균형감각을 상실한 졸속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키 힘들게 됐다. <전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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