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총리를 화나게 하지 말라(송진혁칼럼)

현승종총리의 경우를 보면 권력이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를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보통 권력은 조직·세력·금력 등에서 나오고 이런 실질적 뒷받침이 없으면 고위직에 앉아봐야 「얼굴마담」 소리나 듣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현 총리의 경우 조직도,세력도,돈도 없지만 이 대선정국에서 아마도 가장 강력한 인물이 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내에 선거관리보다 중요한 문제가 없고 선거관리에 관한한 현 총리가 「가장 센 사람」임이 분명하다. 공명선거를 위해 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한 정부안에서 누구도 그의 말을 안들 수 없고 정권을 잡겠다는 후보나 정당들도 그의 말을 거역하기 어렵다.
○누구보다 강력한 총리
실제 정당과 후보들이 그의 눈치를 살피는게 역연하다. 각당이 다투어 그의 중립의지를 칭송하고 국회에서도 환심을 사려는 기색이 농후했다. 현 총리가 불법선거운동을 경고하자 각당이 모두 자제하는 시늉을 내는 판이다.
정부안에서나 정치권에 대해 역대 어느 총리의 말이 이처럼 먹혀든 적이 있었던가. 선거문제에 관해서는 아마 노 대통령도 현 총리처럼 단호하게,권위있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5년전 3김과의 그 열전을 치른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이제와서 2김1정한테 심하게 말하기는 아무래도 거북할 것이다. 현 총리는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단호하게,강하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다. 이미 「후보입건」 경고까지 한바 있다.
조직도,세력도,돈도 없는 현 총리의 이런 강한 발언권 및 정치권도 눈치를 살펴야 하는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기묘하게도 그것은 「언제라도 물러나겠다」는 그의 허심에서 나오는 것 같다. 총리를 더하고 권력을 잡아야겠다는 집착이 아닌 언제라도 그만 두겠다는 허심이 현 총리 힘의 근원으로 보이는 것이다.
가령 현 총리가 총리를 계속 해야겠다는 욕심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는 대통령과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고 말을 적당히 하고 처신을 타협적으로 할 것이다. 그럴 경우 그는 틀림없이 힘도 없고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무력총리,「얼굴마담」이 되고 말것이다.
그러나 현 총리는 총리를 원한 것도 아니고 이 기회를 잘 살려 다음 정권에서 한건 해보자는 생각도 없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자리에 연연않는 허심
대학총장으로서 내외 둘이서 살며 평소 집안에서 물걸레질도 더러했고,총리교섭을 받고 그자신 극구 사양했을 뿐 아니라 7순의 부인도 『영감,정신 나갔수』라 했다니 그 일가의 분위기를 짐작할만 하다.
그러니까,그만 둔다면 언제라도 그만둘 분이니까 누구나 어려워 하고 겁내고 말발이 세지는 것이다.
여기에 법학으로 생애를 보낸 7순 노인의 옹고집같은 것까지 어우러져 이 특수한 선거정국에서 근래 보기드문 강력한 총리가 되고 있는게 아닌가.
그러고 보면 권력이란 기묘한 것이다. 집착하고 더 하자고 하면 할수록 권력은 약화되고,버리고 떠나자고 하면 할수록 강화되는 현상을 현 총리에게서 보게 된다.
가상해서 현 총리가 정말 내힘으로는 도저히 공명선거를 할 수 없다고 물러나 버린다면 대선정국은 간단히 「총체적 낭패」 상황에 빠질 것이다. 우선 노 대통령부터 입장이 난감해지겠지만 현 총리를 물러나게까지 선거판을 만든 2김1정이 죽을 지경이 될게 뻔하다. 선거판이 엉망이 되면 현 총리의 성격이나 법학자적 양심에 따라 물러나기 전에 후보입건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유력후보라도 위법하면 자기의사와 상관없이 입건안할 수 없다고 그는 이미 공언한바 있다. 현 총리가 물러나든 그의 결심으로 유력후보가 입건되든 선거판에는 일대 회오리바람이 불 것이다.
당락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그런 선거판에서 누가 당선되든 공명선거 붕괴→차기정권의 정당성 상실→정국위기→총체적 난국의 코스가 뻔하므로 우리의 90년대와 21세기는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
○떠나면 누가 책임지나
현 총리는 최근 계속 심기가 불편하다고 들린다. 그토록 경고하고 당부했는데도 TV와 신문,각종 보도를 보면 불법·탈법선거운동이 계속되고 있고 그래서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내가 그만 두는게 옳지 않을까」하는 말을 되뇌곤 한다는 것이다.
자,계속해서 현 총리를 노엽게 할 것인가. 그래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때문에 홀연히 총리직을 걷어차고 나가는 보기드문 공직자상을 한번 만들어 낼 것인가.
그래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이 대선정국에서 그런 일은 차라리 재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이상 현 총리를 화나게 해서는 곤란하다. 그를 화나게 하지 않는 방법은 누구보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잘 알것이다.
현 총리를 화나게 하지 말라.<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