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식 모양좋은 끝내기/추곡수매 타결과 국회 순항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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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립내각 비위맞추려 강공 자제/3당 단일안합의 전례없는 수확
14대 첫 정기국회인 159회 정기국회가 19일 오후 본회의에서 예산안·추곡수매 동의안·각종 세법통과를 끝으로 사실상 폐회된다.
현안없는 국회의 마지막 쟁점이던 추곡수매문제도 16일밤 정부와 민자·민주·국민당이 각각 한걸음씩 물러섬으로써 타결됐고,내년도 예산안은 민주·국민당이 5백억∼1천억원의 순삭감을 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38조5백억원의 정부 제출원안 규모대로 통과되거나 약간 조정되어 통과될 전망이다.
이번 정기국회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던 여야 격돌없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초유의 선거중립 내각이 탄생된데다가 3당 모두 대선을 의식,나름대로 모양새 좋은 국회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산안과 추곡수매안을 둘러싼 극한대결도 없어지고 집권당의 날치기통과와 야당의 몸싸움·의사봉뺏기·농성 등 물리적 저지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쟁점없는 국회가 된데 대해 3당 모두 자제력을 발휘해 성숙된 정치를 보여줬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대선분위기에 휘말려 민생법안 처리를 외면하고 국정의 문제점을 추궁하지 못한 물에 물탄 듯한 국회가 됐다는 부정적 평가가 엇갈려 있다.
우선 회기문제만 해도 그렇다. 연말 대선때문에 1백일회기를 67일로 단축운영했고 그마저도 자치단체장 선거시기 문제로 20일이상 허비했으며 11월 들어서는 상임위조차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결국 국정감사와 대정부질문 등 20일 정도만 반짝 국회를 운영했을 뿐이다.
국회가 이렇게 순항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중립내각의 출범때문이다.
민주당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던 자치단체장 선거문제도 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 탈당과 선거관리 중립내각의 출범으로 공격목표를 상실했다.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폭로로 야기된 관권선거시비도 묻혀 버렸다.
여야가 없어진 가운데 민자당은 원내 제1당으로서 『짚을 것은 짚고 넘어간다』는 원칙을 표방했지만 집권당 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한채 정부를 두둔했다. 일부 의원들만이 문제를 다소나마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자세를 보였을 뿐이다.
민주·국민당은 대선을 의식,정부의 중립을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해 현승종국무총리 등을 격려하는 등 대정부 유화제스처로 일관,맥빠진 국회가 되는데 일조했다.
특히 민주당은 남한조선노동당 간첩단사건이 발표되면서 이념성에 흠집이 나자 그 반사작용으로 안기부·국방부에 대해 예년과는 달리 예산심의와 국정감사 등에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더구나 수권정당으로서의 이미지 부각과 뉴DJ론 확산을 정기국회의 기저에 깔아 처음부터 대정부 강공을 포기했다.
여기에 3당 모두 일찌감치 시작된 대선운동때문에 본회의를 열어도 번번이 의결정족수가 되지 못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3당이 추곡수매 문제와 관련,단일안을 만들어내 정부와 공동협상을 벌인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추곡수매 3당 단일안이 만들어지게 된데는 결정적으로 민자당조차 6백만 농민표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는 하다.
어쨌든 지난해 대비 추곡가 5% 인상에 8백50만섬 수매를 내세운 정부에 대해 3당 공동으로 대응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다.
민자당은 8% 인상 1천만섬 수매안을,민주·국민당은 15% 인상 1천1백만섬 수매안을 내놓았다가 절충을 거듭한 끝에 7% 인상에 9백60만섬 수매라는 단일안을 만들었다.
정부도 나름대로 중립내각의 체면을 지킨 셈이다. 3당 단일안에 대해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청와대 재가를 얻어 『수매량은 수용할 수 있지만 수매가 7% 인상은 금년 예상 물가상승률이 5%선인 만큼 수용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텨 중간선인 6% 인상으로 타결짓는데 성공했다.
6공 집권말기에 물가를 잡아놓고 물러나겠다고 결심을 굳힌 노 대통령과 최 부총리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국회는 3당 합의로 정치특위를 가동,대통령선거법·정치자금법개정안을 통과시켜 관권선거의 소지를 상당 부분 없애고 선거운동방법의 현실화를 추구한 것은 적지 않은 성과다.
더구나 3당 모두 국회를 파행으로 끝맺지 않기위해 조정과 타협으로 현안들을 풀어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만 하다.
다만 이것이 정치력의 성숙때문이라기 보다는 후보들의 대선전략의 일환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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