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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깨끗한 대선캠페인(국운걸린 공명선거: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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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거때면 급조당원 홍수/3당 주장 당원수 유권자의 반/겹치기… 입당조건 금품요구도
선거철만 되면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거의 모두가 정당원이 되는 듯하다. 각 당의 발표하는 당원수는 전체유권자의 절반을 넘는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그 도가 훨씬 심해 우리의 종교인구만큼이나 고무줄현상이 될 것 같다.
정당집회마다 당원아닌 당원이 수만명씩 몰려들고 울산·서산에는 오늘도 「당원」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대선이 한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입당원서가 신문사이에 끼워진 광고전단만큼이나 흔하게 나돌고 있다. 입당을 권유하는 전화도 끊이질 않아 전 유권자의 급조당원화가 전국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민자·민주·국민당은 당원배가운동을 두눈 부릅뜨고 벌이고 있다.
민자당은 지난 7월부터 10월말까지 3백만당원을 배가시킬 계획을추진했고 선거때까지 8백50만명을 목표로 뛰고 있다.
민자당은 이를 위해 최근 각 지구당에 5천만원의 지원금을 내려보냈고 암행감사반을 운영,수시로 실태를 점검한다.
이 때문에 일부 지구당위원장들은 동단위 책임자들에게 선거결과 투표율이 우수한 지역에 대한 포상을 내리는 사례마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의 일부 인사들은 이런 무리한 목표때문에 무슨 돌발사가 하부에서 벌어질지 전전긍긍하면서도 일단 당원이 되면 70∼80%는 자기당 후보에게 찍을 것이라는 계산때문에 강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현재의 2백만 당원을 5백만명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지만 무리한 확장운동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통 야당으로서 고정당원이 확보돼 있는데다 지역성을 배경으로한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에는 지구당별 당원간담회와 지구당 창당·개편대회,부녀자 연수교육 등 행사때 당원들에게 입당원서를 배부한뒤 인맥 등을 따라 1∼2명씩 늘려나가는 고전적 방법을 써왔으나 대선이 임박해지자 방식을 바꾸었다. 지구당별로 『사랑하는 가족에게』『김대중을 아십니까』 등 책자나 김 후보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책 1천∼2천부씩을 지역 유지들에게 우송하고 전화를 걸거나 직접 방문,입당을 권유하고 있다.
당원확장에 가장 저돌적이고 열성적인 국민당은 이미 4백만명을 확보했다며 대선때까지 1천만명으로 늘리겠다는 의욕을 갖고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공조직을 통해 7백만명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현대를 통해 끌어들이겠다고 겉으로는 말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현대그룹이 총동원되어 유권자 3분의 1을 당원화하려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현대계열사 임직원들에게는 직급에 따라 20∼30명에서 1백여명씩 지인들의 명단과 전화번호를 적어 제출토록 한 뒤 이를 토대로 입당을 권유하고 있다. 여기엔 해외지사직원도 예외가 없다.
이 때문에 현대직원들은 국내외를 불구하고 요즘 주업무가 직장일인지,국민당선거운동인지 모를 지경이라는 후문이다. 국민당은 특히 입당자들에게 정주영대표의 현대그룹성장실적을 보인다며 계속 관광을 시켜 선거법위반 경고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당측은 모두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최근 주택가에서 입당원서 3장씩이 든 우편물이 대량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국민당은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들에게 상당한 「실탄」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고 지구당 경상비지원도 월 6백만원에서 8백만원으로 인상했다.
이들 3당의 목표치대로라면 우리나라 총유권자(2천9백50여만명)의 절반이 정당에 가입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이처럼 주장하는 각 당의 당원수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중복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본인도 모르게 당원이 되는 사례마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당은 지난 3월 총선당시 2백50만 당원이라며 민자당보다 많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대선준비를 위해 7,8월중 컴퓨터 검색 및 반송우편물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중 20%가 넘는 50만명 가량이 허수였던 것으로 자체 판명됐다. 당원급조현상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민자당은 지난달 뒷면에 김영삼총재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새 당원증을 만들어 기존의 것과 모두 교체했다. YS의 얼굴이 있는 쪽만 보면 선전물처럼 여겨져 당원들이 자연스레 이를 유권자들에게 건네줘 입당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기존 당원들의 이합집산도 급조당원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보다는 개개인의 이해타산에 따라 당적바꾸기를 예사로 안다. 총선이 끝난지 1년도 채안돼 탈당과 입당을 두번씩 되풀이한 의원이 있는가 하만 최근 어느 의원이 모정당을 탈당하자 7천여당원중 3분의 1 가량만 그와 행동을 같이했다.
이러한 정당·정치인들의 편법적이고 변칙적인 당원확장방식에 문제가 있지만 유권자들의 의식구조에도 일대 개혁이 있어야 한다. 적게는 10여명에서 많게는 수백명이 입당하겠다며 당에 연락을 한뒤 입당의 대가로 공공연히 금품이나 선심관광을 요구하는 사례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강남 어느 동네의 할머니 5명이 모정당에 전화를 걸어 입당의 대가로 금품과 관광의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등 계모임·친목회 등에서 입당을 흥정하는 일이 지구당마다 하루평균 1∼2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식의 정당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제는 급조당원의 고리를 유권자 스스로가 끊어야 할 때다. 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공감하지 않는 정당원이 다반사인 풍토에서 어떻게 정당정치가 뿌리내릴 수 있겠는가.<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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