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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자 대출·영농 컨설팅 … 전북 장수군 '농촌 살리기'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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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파산 위기에 몰린 농민들에게 재기의 디딤돌을 놓아 주어야 농촌이 살아납니다."

30년 동안 농사를 짓다 2002년 7월부터 전북 장수군을 이끌고 있는 장재영(62) 군수가 재해나 농산물 가격 폭락 등으로 부채의 덫에 걸려 신음하는 농민들을 구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농가에 무이자로 5000만원을 빌려주고, 경영.영농 컨설팅을 해 주는 '농민 회생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2004년 시작한 이 실험에 모두 97명의 농민이 지원을 받았다.

지금도 한우 100여 마리를 키우는 장 군수는 "농사에 한번 실패한 농민은 빚에 눌려 밤에 몰래 도망가는 경우가 많다"며 "농가를 이런 수렁에서 구하는 것이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무이자 지원에 영농 컨설팅까지= 파산 위기에 처한 농민 중에는 농촌에서 젊은이로 통하는 30~50대가 많다. 전체 농가의 20~30%로 추정되는 이들은 의욕적으로 농사를 시작했지만 홍수나 폭설, 농산물 공급 과잉 등으로 낭패를 보았다. 게다가 이들은 담보도 없고 대출한도 등에 걸려 더 이상 금융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장수군은 한계에 처한 이들에게 1인당 5000만원을 10년간(3년 거치, 7년 상환) 무보증, 무이자로 빌려주는 모험을 시도했다. '도전하는 농민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장 군수의 결단이었다.

담보도 없는 농민에게 큰돈을 군이 빌려주겠다고 하자 일부에서 반대했지만 장 군수는 설득에 나섰다. 장수군은 공무원 인건비.사무실 경비 등을 줄여 기금을 마련했다. 여기에 불필요한 농로 포장, 마을회관 건립 등을 줄여 기금을 100억원으로 키웠다.

그러자 군의회와 군민들이 동의를 했다. 장수군은 철저하게 3단계 심사를 해 대상자를 선정했다. 이렇게 해서 2004년부터 지금까지 97명이 지원을 받았다.

◆"지원 농가 90%가 회생 가능"=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다 10여 년 전 귀향한 전명신(39.장수읍 개정리)씨는 1000여 평의 토마토 밭에서 연간 4000만~5000만원을, 3000여 평의 사과 농장에서 4000여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처음에 전씨는 무.배추 농사를 짓다 값싼 중국산에 밀려 밭을 갈아 엎고 수천만원의 빚을 졌다가 3년 전 '농민 회생 프로젝트' 대상이 되면서 재기했다.

이웃 농가에 보증을 섰다 2억여원의 빚을 져 농사 포기 직전까지 갔던 윤종열(41.계남면 가공리)씨도 2004년 장수군으로부터 회생자금을 받아 한우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는 현재 연 6000만~7000만원의 소득을 올리면서 부채를 절반으로 줄였다.

장수군이 2004~2005년 자금을 지원받은 농민 73명의 경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93%(68명)가 회생 가능한 것으로 판정됐다. 회생 가능성은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30% 이하로 낮아진 경우를 말한다. 장수군 관계자는 "사업 첫해인 2004년에 지원받은 농민들은 올해부터 지원금을 갚아야 하는데 거의 대부분 상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장수=장대석 기자

장수군의 '농민 회생 프로젝트'는 …

-전체 기금=100억원

-농가 선발=3단계 심사 통해 1년에 20~30농가 선정

-대출 자금=농가당 5000만원

-융자 기간=10년(3년 거치, 7년 균등 상환)

-멘토=농가당 3명의 공무원, 영농지도, 자금운영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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