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납부가 섹스 못지 않는 쾌감 유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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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모두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세금 납부가 쾌감을 유발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보고가 나왔다. 자선 단체에 자발적으로 돈을 기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훌륭한 목적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라면.

오레건 대학의 경제학 교수이자 메사스추세츠주 캠브리지 국립경제연구위원회(NBER) 위원으로 있는 윌리엄 하버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15일(현지시간) 발행된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 논문(Neural Responses to Taxation and Voluntary Giving Reveal Motives for Charitable Donations) 에 따르면, 세금이나 기부금을 낼 때 음식이나 섹스 못지 않은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2명, 인지심리학자 1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오레건 대학에 재학 중인 19명의 여학생에게 현금을 100달러씩 주고 그 중 일부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10달러에서 45달러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60개의 각각 다른 과세 시나리오를 읽어보도록 했다. 그런 다음 시나리오 중 하나를 무작위로 선택해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100달러에서 공제하도록 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자기 통장에 입금한 돈이 푸드뱅크(모은 돈으로 식료품을 구입해 결식 아동이나 노인.노숙자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나눠주는 구호단체)에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볼 때 이들의 대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했다. 놀랍게도 이때 학생들의 대뇌 '보상센터'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나타냈다. 보상센터는 쾌감 유발을 관장하는 대뇌의 부분이다. 조세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같은 반응을 나타냈다.

하버 교수는 사람들이 겉으로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세금 관련 법규에 대해 고분고분 따르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래의 조세 이론을 재확인시켜준다. 세금을 내는 것은 탈세범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이 좋은 목적을 위해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금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세금 납부 자체 때문이 아니라 세금이 좋은 목적을 위해 제대로 쓰여지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리 이기적인 존재는 아니다.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돈을 기꺼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우리가 돈을 다룰 때 어떻게 대뇌가 그 방향을 지시하는지를 알아보는 '신경경제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기념비적인 연구작업이다. 심리학과 경제학의 만남인 셈이다.

하버 교수는 이번에는 과세 시나리오가 아닌 자선 기부금 시나리오로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이 기부액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대뇌 촬영 결과 대뇌 보상센터에서 강제적인 세금 납부 때보다 훨씬 많은 움직임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기 때문에 기분이 더 좋은 것이다. 대개 다른 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기부금을 내는데 이 때문에 뭔가 뿌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앞의 실험에서 가상의 세금에 대해 가장 많은 대뇌 활성화를 보인 10명은 두번째 실험에서도 나머지 9명보다 2배에 가까운 평균 17달러를 냈다. 나머지 9명은 평균 10달러를 기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따뜻한 빛' 이론(Theory of warm glow giving)을 실험으로 증명하고 있다. 순수한 목적으로 기부금을 내는 '순수한 이타주의'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남에게 돈을 줄 때 자신은 이미 '쾌감'이라는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이장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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