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날개 단 두산그룹 7년 만에 빛 본 ‘7000억 베팅’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4호 19면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건물 33층엔 문패가 없는 방이 하나 있다. 두산그룹 총수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방이다. 하지만 이 방은 최근 6개월간 주인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박 회장은 요즘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해외로 바삐 돌고 있다. 올 들어 그가 국내에 머문 기간은 열흘 남짓에 불과하다. 귀국하면 성북동 자택에서 곧바로 짐을 꾸려 수행원 없이 혼자서 다시 비행기를 탄다. 지금까지 지구 15바퀴를 돌았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겨울올림픽 유치는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의 기회”라고 강조하고 있다.

박 회장이 겨울올림픽 유치에 ‘올인’하는 데엔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2005년 ‘형제의 난’은 그에게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둘째 형인 박용오 전 회장과 사이가 틀어진 것은 물론 횡령과 분식회계로 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야 했다. 그보다 더 아픈 건 가족경영의 모범으로 여겨졌던 두산의 이미지가 땅에 떨어진 점이다. 올 초 특별사면으로 법적으로는 자유로워졌지만 자신과 오너 일가에 대한 따가운 눈초리는 완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두산 관계자는 “겨울올림픽을 유치해 과거의 허물에 대한 사회적ㆍ도덕적 사면을 받는 계기로 삼고 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게 박 회장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다행히 시장은 그에게 우호적이다. 내년 말까지 그룹의 지주회사가 될 예정인 ㈜두산은 지난 14일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급등하며 주당 15만원까지 치솟았다. 2월 말 5만원대 초반에서 세 배 가까이 올랐다.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과 인프라코어도 3월 이후에만 주가가 50% 이상 뛰었다. 현대증권 정성훈 애널리스트는 “두산은 1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맥주로 대표되는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이라는 자본재 기업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했다”며 “지주회사화를 통해 투명성이 강화되면 오너 리스크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기업가치를 높인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맥주가 아니라 사업을 물려받았다”=1996년 초 서울 을지로 입구 두산빌딩. 컨설팅 회사인 매킨지의 김용성 컨설턴트(현 두산인프라코어 사장)는 회의실에 들어오는 두산 측 사람들을 보다 깜짝 놀랐다. 오너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당시만 해도 오너들이 컨설팅 결과를 보고만 받았지 컨설턴트들과 직접 얘기를 나누는 경우는 드물었다”며 “오너 경영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직접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게 빠른 변신의 비결이 됐다”고 말했다.

당시 두산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전체 자산이 4조원 남짓한 상태에서 현금 흐름은 마이너스 9000억원에 가까웠다. 덩치가 커질수록 까먹는 구조였다. “은행 이자율이 12∼13%인데 영업이익률은 6∼7%에 불과한 상황”(박용만 부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임직원들 사이엔 ‘밤새 안녕’이 인사가 됐다. 무엇보다 현금 확보가 시급했다. 알짜배기인 한국네슬레ㆍ3Mㆍ코닥 등의 주식부터 팔아야 했다. “내게 걸레면 남에게도 걸레”라는 박 회장의 유명한 말은 이때 나왔다. 하지만 이것으론 부족했다. 가업이자 주력인 오비맥주도 팔아야 했다. 박 회장은 “선친이 물려주신 건 맥주가 아니라 사업”이란 말로 마음을 다스렸다. 물려받아 망하느니 새 사업으로 일어서는 게 선친인 박두병 회장의 뜻에 부합한다는 다짐이었다. 남은 사업은 하나로 모아 ㈜두산으로 합병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다음 과제가 문제였다. 먹고살 거리가 눈에 띄지 않았다. ‘자본재’라는 방향은 잡았지만 마땅한 물건이 없었다. 그러던 2000년 한국중공업이 민영화 시장에 나왔다. 두산은 이때 3057억원을 써내 인수에 성공했다. 당시 인수팀의 일원이었던 이상하 전무는 “사실은 7000억원짜리 베팅이었다”고 말했다. “컨설팅 회사에서 한국중공업의 가치를 마이너스 4000억원으로 평가하며 절대 인수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체적으로 따져보니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판단은 적중했다. 인수 뒤 두산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꾼 회사는 군살빼기와 효율화를 거쳐 효자로 탈바꿈했다. 인수 당시 3870원이던 주가는 6년여 뒤인 현재 22배 가까이로 뛰어올랐다. 2003년 두산산업개발(옛 고려산업개발), 2005년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 등을 인수하며 변신은 일단락됐다.

■지주회사화 이후는=두산은 현재 ‘형제의 난’ 뒤 제기된 시장의 질문에 대답하는 중이다. ‘지배구조를 개선해 투명성을 높이라’는 요구에 지주회사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룹 측은 내년 말까지 ㈜두산이 지주회사가 돼 두산중공업과 인프라코어 등을 수직으로 지배하는 구조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박용곤 명예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올해 두 차례에 걸쳐 계열사들이 갖고 있는 ㈜두산 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순환출자를 해소하면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대투증권 송인찬 수석연구원은 “지주회사가 되면 출자구조가 단순해져 부실ㆍ사양 산업을 정리하고 새 사업을 시작하기 쉬워진다”며 “순환출자 해소는 횡령 등 오너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게 작아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의 아픈 기억이 재발하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오너 일가가 골고루 지분을 나눠 갖게 된 만큼 전체의 합의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김진 두산그룹 홍보실 사장은 “지주회사가 되면 그룹 전체가 한 덩어리가 돼 분가가 어려워진다”며 “형제경영의 전통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