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의나!리모델링] 지각대장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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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K씨(27.여)는 회사 출근시간은 물론이고 약속이란 약속은 죄 늦는 편이다. 자신이 먼저 만나자고 한 약속은 물론, 심지어는 중요한 발표 자리에도 늦을 정도이니 할 말 다했다. 어느새 시간약속 늦는 것이 삶의 패턴으로 굳어진 셈이다. 그로 인한 손해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약속 전후로 받게 되는 심적 스트레스에다가, 택시비는 물론 늦었다는 이유로 부담하게 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녀 말대로라면 경제적인 피해만 따지더라도 소형차 한 대 값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시간의 중요성을 귀가 닳도록 말씀하신 분이란다. 그런 그녀가 시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할 리 없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이럴까?

사실 우리 마음은 복잡하다. 문제를 일으키는 하나의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마음이 얽히고설켜 있다.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는 양파 같다고 할까? 한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많고, 겉 마음과 속 마음이 따로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행동을 바꾸려면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마음을 알아내 그것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심층 상담을 해보니 그녀는 '시간의 중요성'보다 '자기 시간의 중요성'에만 매달리는 '시간 구두쇠'였다. 그녀는 아주 작은 시간도 의미 없이 보내는 것을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가방에는 남는 시간의 양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서너 권의 책이 항상 들어 있었다. 그녀의 마음에는 '시간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신념보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더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녀는 약속시간에 늦는 것도 싫지만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것을 더 싫어했다. 그럴 경우에는 자신이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거나 덜 중요한 사람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딱 맞춰서 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셈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출근 시간을 예로 들어 보자. 그녀의 출근 시간은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가는데 평균 한 시간가량 걸린다. 그런데 교통 흐름과 환승 시간에 따라 어떤 날은 50분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1시간10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녀는 최대 출근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늘 최소 출근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50분 만에 도착한 적이 있으니까 50분 전에만 출발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시간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 중에는 시간관념이 없는 사람도 있지만 K씨처럼 시간의 중요성을 잘 아는 이도 적지 않다. 문제는 자기 시간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흔히 '마술적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태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과 상황이 자신의 예상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버스는 제 시간에 와야 하고, 사고는 없어야 하며, 교통 흐름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와 상담을 하면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 동의했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키려면 '시간 이기주의자'에서 벗어나 '시간 평등주의자'로 변모해야 할 것과 세상 일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비현실적 기대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mt@mentaltraining.co.kr

■ 이번 주부터 정신과 전문의 문요한(40)씨의 칼럼을 격주 연재합니다. 잘못된 습관을 교정해 삶을 좀 더 풍요롭고 여유있게 이끌어가는 법을 안내합니다. 문씨는 지난 2월 발간해 현재 10만 부가 팔린 책 '굿바이,게으름'(더난출판사)의 저자입니다. 정신의학과 자기개발을 접목한 멘털 트레이닝 분야 전문가로,'더 나은 삶 정신과'와 '정신경영 아카데미(www.mentalacademy.org)'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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