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접촉」조속한 진상규명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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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당수의 현역 정치인이 「남한조선노동당」간첩사건 주모자들과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놓고 정치권이 진통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치인의 간첩단 관련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접촉한 사실은 분명하다. 이를 놓고 접촉인사가 있는 정당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정당간에 사상적 공방전이 계속돼 왔고,이것이 국민들 사이에 과장된 억측을 유발하고 있어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좋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당초 정부는 이 대규모 간첩사건이 대선에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수사에 신중을 기했다. 선거에서의 엄정중립을 표방한 정부로서는 당연한 자세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권 사정은 달라졌다. 정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미 시중에서는 어느 정당의 모모의원이 관련돼 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구체적으로 퍼져있고,국정감사에서도 정치인 관련여부가 정식 거론되고 있다. 그 때문에 대선을 앞둔 정당이나 후보에게 실제적으로 직접·간접의 영향을 미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엄정한 수사를 통해 사건을 빨리 매듭짓고 밝혀진 진상을 국민에게 가감없이 객관적이고도 정확하게 발표하는 것이다.
발표는 빠를수록 좋다. 수사가 어렵고 복잡하여 많은 시일을 요한다면 정치인 접촉부분만이라도 조속히 전모가 발표돼야 한다. 그래야만 선거에 엉뚱한 영향이 미치는 것을 막고 유권자들이 올바르게 판단하여 투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첩과의 단순한 접촉을 간첩사건과의 직접적인 관련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접촉이라도 있었다면 조사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조사 자체가 당사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줄수도 있다. 따라서 확실한 사실파악 이전에는 엄격하게 비밀이 지켜져야 할 것이다.
확실한 진상이 판가름나기 전에 확인되지 않은 풍문 때문에 특정 정당이나 입후보자가 결정적인 피해를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또 이러한 풍문을 마치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악용하여 반사적인 이익을 노리는 기도가 있다면 이는 공명선거를 위해 결코 도움되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 이런 불확실한 풍문의 소지를 제공하는 일도 삼가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정치권은 정부가 사건의 진상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이 문제에 관해 거론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도 이러한 풍문에 휘말려들어 판단을 흐리지 않도록 경계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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