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보육공약에 정책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의 보육정책 공약을 보면 차이가 거의 없다. 기본방향은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보육에 대한 재정규모를 더 늘릴 수 있는지 경쟁하는 듯하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보육같이 사회적 순기능이 높은 가치재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재정지원 확대를 정치상품으로 제시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향후 여당에서 어떠한 대선 후보가 나와도 대동소이한 정책공약을 제시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선 후보들은 대다수 국민에게 혜택이 가는 정책에 대해서는 정부투자를 확대하는 공약을 제시한다. 반면 특정계층에 비용이 전가되거나 계층 간 심리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정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하지 않으려 한다. 보육정책은 대선 기간 중 매력적인 정치상품이다. 저출산 시대의 인구문제, 여성의 경제참여 활성화, 미래의 인적투자 확대 등 여러 가지 정책목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수단이므로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감성적인 용어를 가미해 재정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논리가 판을 치는 것이다.

보육재정의 양적 확대 측면에서만 보면 역대 정부 중에서 노무현 정부의 성과가 가장 뛰어났다. 어느 정부도 영유아를 위해 정부예산을 1조원 이상 투자한 적이 없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정부가 투자만 확대하면 양질의 보육서비스는 저절로 달성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졌다. 다양하고 질 높은 보육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수요가 높아졌음에도 정부는 공공성 강화라는 허울 속에서 획일적인 서비스만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부문의 보육서비스 질은 경쟁을 통해서만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경제학의 단순한 논리를 외면하고 가격 및 영리법인에 대한 초강도 시장규제를 통해 민간의 경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대신 확대한 보육예산을 통해 보육시설자에게 보조금을 늘리고 정부의 감독과 감시를 강화함으로써 민간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려고 한다. 시장을 무시한 정부가 대신하는 정책에는 항상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육시장에는 한층 복잡해진 정부규제들이 파생해 나타나게 된다. 재무회계 규제를 통해 보육시설의 원가산정 시 차입금 이자 등에 대한 비용을 인정하지 않는 규제를 해야 하고, 자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공동주택 보육시설을 갑자기 국공립화한다고 하고, 2층 이상의 상가 보육시설에 대해서는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희귀한 정책이 보육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시장을 통한 경쟁을 무시하고 형평 위주의 정책으로는 아무리 재정규모를 확대해도 국민세금의 낭비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르게 마련이다. 시장기능을 통해 보육서비스가 해결되면 정부는 구태여 시장에 간섭할 필요가 없다. 대신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규제를 풀어 주면 되는 것이다. 정부의 공공성 강화라는 정책목표는 시장기능에 의해 제대로 해결될 수 없는 일정 소득 이하의 계층에 집중하면 더 효과적이다.

대선 후보들은 현 정부의 정책실패에서 정부의 재정확대가 곧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발전된 보육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보육재정을 확대하고 정부에서 전담하겠다는 공약은 정책이 아니다. 참여정부의 시장억제적 보육정책을 연장하겠다는 것이며 이는 곧 국민세금의 낭비다. 보육정책의 공약에는 반드시 정부와 시장역할에 대한 확고한 방향이 제시돼야 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양질의 보육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수요자들의 다양한 요구는 정부가 절대 만족시킬 수 없다. 시장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 경제논리를 기반으로 온갖 규제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시장에 대해 발전적 정책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경제학과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