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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시장기능 회복이 관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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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나라 농정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추곡수매정책이 지닌 문제점은 아무리 보아도 풀릴 길이 없고 갈수록 태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부와 정치권의 어느쪽도 제도의 개선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고 있으며,어느 누구도 감히 개혁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곡수매동의안은 사실상 동의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경제정책을 안정화시책에 맞게 끌고가려면 이럴 수 밖에 없다는 정부의 의지를 「수매가 인상률 5%안」에 강하게 담아서 국회에 통보했다는 의미밖에 없다.
이미 3당이 제시한 수준에서 훨씬 벗어난 정부안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농민의 표를 의식하는 각당이 결코 나라경제를 염려하는 수준에서 추곡동의안을 처리해주지 않을 것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 서서 수매정책을 거들어줄 여당마저도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정치권은 정부견해를 받아들일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하며 처음부터 코웃음으로 응대하는 분위기다. 거기에다 농민단체는 벌써부터 반발기세가 만만치 않다. 우리는 올해 추곡수매정책을 둘러싸고 국회에서건,또는 농촌현장에서건 집단이기주의에서 빚어질 감정적인 마찰이 선거를 앞둔 이 민감한 시기에 자칫 악화되면 국민이 염려하는 이상으로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될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추곡수매가 5% 인상,수매량 8백50만섬안은 첫째 생산비 감소에도 불구하고 어느해보다 높은 농가소득보상과 수매량 증대를 꾀한 것이며,둘째 양곡관리기금 적자폭 확대 및 재고과잉에 따른 재정부담의 증가,셋째 과다한 쌀값 인상에 따른 물가에 대한 영향과 외국의 시장개방압력을 고려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우선 물가부담을 힘겨워하고,정치권은 표에 대한 걱정으로 서로 본질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권의 주장대로 지금 당장 수매량을 늘려보았자 한정된 재원으로는 전체 생산량의 25% 이상은 수매가 불가능하다. 수매되지 않는 나머지 75% 이상에 대해 제값을 받을 수 있게 시장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농민들의 실질소득을 높여주는 길일 것이다. 아무리 수매가를 높여도 정부가 방출가를 계속 묶어놓으면 지금처럼 산지쌀값이 수매가보다 오히려 가마당 2만원이나 낮아 농민의 영농의욕을 떨어뜨리게 된다.
어정쩡한 정책으로 난처한 처지를 모면하려거나 농민을 현혹시켜서는 안된다.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부담을 더늘릴 각오를 하고 전면적인 이중곡가제를 실시하든지,그렇지 못하면 양곡유통위의 건의대로 방출가를 현실화해 쌀값의 시장기능을 제대로 살리는 제도개선을 서두르든지 해야 한다. 마냥 정책 선택을 기피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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