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긴장완화가 군축열쇠/「동북아 신질서와 한반도」학술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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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일감정론 억제 역내 안보체제 필요/통일은 경제교류 등 쉬운일부터 접근
국민대 사회과학연구소(소장 김영작)가 주최하는 「동북아 신질서와 한반도」라는 국제학술회의가 28일부터 이틀간 서울 하이야트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학술회의에는 한국­중국 수교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주변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분석과 역내 집단안보체제 구축의 필요성 등이 깊이 논의됐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미국·일본·중국측 논문을 한편씩 소개한다.
◇윌리엄 글라이스틴(전주한미대사)=동북아 안보를 위해서는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의 점진적이고 균형된 군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돼야 한다.
동아시아에는 신뢰구축과 군비감축 문제가 논의될 수 있는 다자적인 틀이 필요하다. 이것은 대만과 북한에도 개방돼야 한다.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지만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적절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마 북한은 당분간 상호핵사찰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북한의 정책에 명백한 변화가 없는한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관계를 진전시켜선 안된다.
역내의 가장 큰 관심은 미국과 한국,또 다른 나라들이 일본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데 어떻게 적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위협적이지 않는 한 일본의 방위노력은 자위와 국제평화 활동에 국한될 것이다. 미국은 이성적으로 동아시아에서 누렸던 권위의 일부를 일본에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의 경계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일본의 역할확대에 지속적인 우려를 표시해왔다.
한국은 중국과의 공동이해를 근거로 일본에 대항하는 한중간의 비공식 동맹체제를 구축하려는 유혹을 받고있다. 일본을 적대시 해서는 손실이 엄청나며,중국은 여기서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은 한­일,일­중,러시아와 다른나라 사이의 충돌방지 역할을 위해 단계적 감축속에서도 이 지역에 주둔해야 한다.
◇다케사다 히데시(무정수사·일본방위연구소)=냉전후에 민족과 지역이익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대두하고,무기판매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런 복잡한 반적관계에서 아시아에서도 다국간 안보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먼저 유럽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다. 이들의 논거는 첫째,아시아는 지역대립이 선행한뒤 미소대립이 얽히는 복층적 대립구조를 갖고있어 냉전 이후 지역대립 구도가 더욱 명확해 졌다는 것이다. 둘째,아­태안보는 한­미,미­일 등 2국간 관계가 중심이 돼 형성돼 있다. 셋째,일본의 정치·안보분야 역할증대에 대한 인식이 국가마다 차이가 크다. 넷째,아­태지역에는 위협의 인식이 다양하다. 다섯째,아­태안보는 협조를 지향하기 보다 각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단독행동들이다. 여섯째,한반도 문제처럼 아­태안보 문제는 다국간 안보라는 발상으로는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문제가 있다. 이밖에 정치문화가 다양하고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거리도 다양하다.
그러나 아­태지역의 대립과 이해의 혼란이 오히려 위협의 다양성과 더불어 인식의 일치를 향한 협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지역 안보에 최대의 역할을 해온 미국이 냉전 피로에서 회복할 조짐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아­태지역에서 신뢰증진을 위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를 느끼게 한다. 일본의 역할에 대한 인식차는 다국간 의견교환으로 좁힐 수 있으며,이 문제를 감정론으로 다룰 시기는 지났다.
각국별 입장도 다국간 안보에 부정적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딩성리(정승리·중국평화발전연구소)=동서냉전이 종언을 고하면서 한반도의 정세도 크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아직 통일에 불리한 요소가 상존해 있다.
한반도 내부에는 남북 쌍방이 서로 다른 사회제도와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고,냉전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으며,경제발전의 격차가 크다.
외부환경면에서 냉전종식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모순이 뒤엉켜 있고,관련국들이 전략적 이해에 따라 간섭하고 있고,통일을 방해하려는 대국도 있다.
전쟁으로 통일하는 것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며,경제실력으로 다른측을 삼키는 독일식 통일도 한반도와 독일은 역사적 배경과 환경·조건·경제사정 등이 모두 상이해 통용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현실을 인정하면서 합의될 수 있는 점을 찾아내도록 하고 의견이 엇갈리는 점은 보류해둔다.
둘째,풀기 어려운 문제는 피하고 쉽고 용이한 길을 택하며 작은 일을 착실히 축적하면서 큰일을 성취하도록 해야 한다. 경제교류·합작부터 착수해 인적교류를 시작하고 문예 및 스포츠교류·합작에 착수한다.
셋째,정책을 조정하고 화해와 합작을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넷째,유관대국들은 한반도에 관한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 외국군대는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하며 외부의 간섭,강제적 압력은 역효과를 내므로 피해야 한다. 미일은 과거 교차승인을 주장했는데 중국은 앞서갔다. 앞으로 미일의 태도를 지켜보겠다.
남북은 적당한 시기에 민심에 순응해 대다수 민중이 용납하는 방식으로,예를 들어 연방제 등을 받아들여 단계적으로 민족통일의 역사적 임무를 실현해야 한다.<정리=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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