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 (7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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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림=김태헌

희고 긴 치마를 입은 신부님이 강론을 시작하셨다. 나이는 한 오십대 중반쯤 되셨을까. 당연히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아 쪼유에게 오늘 못 본 영화 언제 볼까, 뭐 이런 문자를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 얼마 전에 주교님도 특별 담화를 하셨지만, 정말 요새 이혼 큰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문자를 보내다 말고 내가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해쓱한 얼굴이 굳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신부님을 바라보았다.

"왜들 그렇게 참을성이 없는지 말이에요. 조금만 맘에 안 맞으면 이혼하네 뭐네. 요즘은 애들도 서로 안 맡으려고 한다면서요? 내 정말 이해가 안 가요. 그거 조금씩만 양보하면 다 되는 걸 말이지요…. 지난번에 가톨릭 신문에 난 어떤 자매 이야기 좀 하고 싶어요. 그 자매는 남편이 돈도 안 벌어 오고 때리고 바람피우고 그런데도 그걸 다 참아내고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남편을 수발했답니다. 드디어 40년 만에, 그러니까 죽기 전에 남편이 회개하고 하느님한테 돌아와서는 이 자매 손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회개했다는 거예요."

그 자리가 둥빈 아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만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웃음을 터뜨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겠지. 그런데 신자라는 사람들은 정말 착한 사람들인지 모두 착한 얼굴로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나는 곁눈질로 엄마를 살폈다. 엄마는 고개를 숙인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신부님의 강론은 이어졌다.

"사람들이 너무나 참을성이 없어요. 예전의 엄마들 얼마나 참을성이 있었어요? 내가 요새 이혼한다는 사람들한테 그 자매 이야기를 스크랩해서 나눠주고 있어요. 어떤 자매는 이혼하려고 하다가 그 기사 보고 눈물로 참회를 했다고 나에게 편지를 했더라구요. 죽는 날까지 남편을 위해서 기도하고 더 참고 더 잘해주겠다구요. 그런 자세를 좀 본받아야 해요. 그 자매가 결국 망나니 남편을 구원한 거 아닙니까? 만일 그 자매가 못 참겠다고 남편한테 대들고 이혼하고 그랬으면 어떻게 됐겠어요? 결손 가정이 되는 거고, 그 결손 가정의 아이들 다 문제아들 아니에요? 청소년 범죄의 80%인가가 결손 가정 아이들이라는데….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다 사회 문제로 이어지는 거라구요."

지루한 강론은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지다가 끝이 났다.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자 사회 문제의 주범인 우리 문제아 삼 남매는 "조금도 참지도 못해" 이혼을 세 번이나 한 엄마와 함께 다시 일어서서 기도를 했다. 엄마는 무어라 기도했을까. 엄마는 나중에 말했다.

"엄마?…… 하느님 제발이지 저 신부님 강론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지."

미사가 끝나자 엄마가 우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나도 엄마도 물론 동생들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가을 저녁은 조금씩 더 빨리 내리고 있었다. 엄마는 잠시 저녁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꾸민 듯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둥빈이 좋아하는 회전초밥 먹으러 갈까?"

막내 제제만, 응! 하고 대답했을 뿐, 둥빈과 나는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거 비싸잖아."

엄마가 둥빈에게 계속 시선을 보내자 둥빈이 말했다.

"괜찮아, 엄마 요새 돈 많이 벌었어. 책이 점점 더 많이 팔리고 있대. 그러니까 괜찮아, 그 금가루 묻힌 초밥만 안 먹으면 돼."

엄마는 힘이 들 때 언제나 그러하듯이 씩씩한 척하면서 앞장서 가다가 다시 말했다.

"아니, 괜찮아…. 금가루 묻힌 것도 먹어도 돼. 먹구 힘이 날 수 있다면 뭐든 먹어두 돼. 엄마가 오늘 세게 쏠게…. 너희 오늘 왜 괜히 효자들인 척하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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