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조원과 시민이 등돌린 노동운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민주화 20주년을 맞은 올해 노동운동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시민은 물론 당사자인 노조원마저 투쟁 위주의 노동운동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투쟁세력이 순수성을 잃고 권력이 됐다는 비난도 끊이지 않는다.

한국노총에 따르면 노조원과 시민이 한국.민주노총의 노동운동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파업은 민주노총이 하고, 피해는 노조원이 봤다'는 어느 노조원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불만 질러놓고 수습은 하지 않는 무책임한 투쟁 행태에 노조원이 진절머리를 내는 것이다. 시민의 불신도 크다. 노조가 너무 자주 파업한다는 의견이 74%에 달했고, 잘못된 노동운동으로 오히려 노조가 피해를 본다는 응답도 78%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라든지 이라크 파병 반대를 내건 정치파업에 특히 부정적이다.

노조원과 시민의 냉랭한 분위기는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FTA 반대 파업 추진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노조원 찬반투표도 거치지 않고, 불법파업을 하기로 했다. 명분 없는 파업으로 찬반투표 자체가 여의치 않자 아예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올 초 취임하면서 "조합원에게 인정받고, 국민에게 사랑받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절차를 무시해 가며 노조원이 원하지도 않는 정치파업을 강행하는 게 최선이라니 어리둥절할 뿐이다. 불과 얼마 전에 "파업을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던 현대차 노조위원장도 이번 불법파업에 동참할 모양이다. 국민을 뭐로 알기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가.

다수의 합리적인 목소리가 소수 강경파에 의해 묻히는 기형적인 노동운동은 참담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는 노조원의 일자리를 지켜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투쟁세력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민심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지 않으면 머지않아 노총은 간판을 떼고, 투쟁세력은 허허벌판으로 쫓겨날 것이다. 정부는 법대로 엄정하게 처리하라. 그게 비틀거리는 노동운동을 바로잡고, 불안해 하는 노조원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