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생각은…

학교는 붕어빵 찍는 공장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올해 초 한국경제의 '샌드위치 위기론'을 제기한 데 이어 며칠 전 '샌드위치 심화론'을 내놓으며 그 원인으로 국내 교육제도를 지적했다. 획일적인 우리 교육으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창조적 인재를 배출해 낼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저서 '부의 미래'에서 미국 학교를 타이어가 펑크 난 자동차, 라디에이터가 고장 난 자동차에 비유했다. 그리고 이런 고물 자동차와 같은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해마다 4000억 달러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천재 지성으로 불리는 자크 아탈리는 한국이 2025년께 세계 11대 강국에 포함될 것이란 기분 좋은 전망을 내놓았다. 한국인의 놀라운 공동체 의식과 집단 욕망이 성공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그중 하나가 교육문제다. 영어 과외에 7억5200만 달러를 쏟아붓고도 토플 순위가 세계 110위권인 고비용 저효율 문제를 해결한다는 조건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자산은 인적자원이다. 다행히 우리의 인적자원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수학.과학 분야에서 국제학력평가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학생들, 지구상 어느 민족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그렇다. 교사들은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임용됐다. 그런데 이런 인적자원으로 구성된 우리 교육이 국가 주도 평준화 정책에 묶여 '붕어빵 교육'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이 드세다. 지난 33년간 지속돼온 '고교 평준화'의 기여도를 폄훼할 필요는 없지만 평준화를 벗어나려는 우리 사회 약자들의 각종 노력들이 번번이 좌초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교육에 대한 정치권의 불간섭과 국가 행정기관의 규제개혁에서 비롯돼야 한다. 그래서 공립학교를 공립답게, 사립학교를 사립답게 발전하게 하는 학교교육의 이원화 정책이 시작돼야 한다. 그래도 기존의 붕어빵이 식빵 정도로밖에는 변화하지 못할 것이다. 보다 바람직하게는 공.사립 이원화 학교정책을 넘어 사립학교들에 대한 다원화정책이 요구된다. 다품종 소량생산 형태의 교육 시스템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여 년간 뜻있는 교육자들에 의해 설립.운영돼온 100여 개의 각종 대안학교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홈스쿨링'으로까지 교육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제 우리도 다양한 교육 패러다임에 맞춘 소규모 학교들을 활성화해 학습자들이 개성.능력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을 받는 학교교육 모델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학교들이 대량생산에 맞게 디자인돼 공장처럼 가동되고, 관료적으로 관리되고, 강력한 교원노조와 교사들의 투표권에 의지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인다. 미국 학교교육에 대한 토플러의 지적이 우리 사회라고 다르겠는가.

오성삼 건국대 교육대학원장 전국교육대학원장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