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작고 일 잘하는 정부가 선진경제 디딤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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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성장 잠재력·기업 부문
지식기반 서비스업이 차세대 성장 동력

"현 추세대로 간다면 2015년까지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연 4.7% 안팎에서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곽노선 교수(서강대 경제학부)의 전망이다. 곽 교수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 연 6~7%대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이 2000년 이후에는 연 4% 중반대로 떨어졌다.

이는 외환위기를 겪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곽 교수는 하지만 총요소생산성의 상승을 가져올 수 있는 혁신적인 제도개선에 성공한다면 향후 5.8%대의 성장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 생산성 뿐 아니라 근로자의 업무 능력, 자본투자, 기술 등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생산 효율성 수치다.

곽 교수는 또 고령화와 근로시간 감소도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외환위기 이후 둔화된 투자도 자본 축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서비스 산업의 확대와 함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지식기반 서비스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전통적인 서비스업종의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경제학과 홍기석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수익성이 나아지면서 부도율이 떨어지고 기업 지배구조도 개선되고 있다"며 "하지만 기업들이 안정을 추구하면서 투자가 위축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기업경영환경 개선 노력이 투자를 둔화시켰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같은 투자둔화는 유럽국가들이 과거에 겪었던 상황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소개했다. 홍 교수는 국내 기업들의 부채비율도 외환위기 이전에는 약 350%에 달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으나 2005년에는 100%로 미국(136%), 일본(136%)에 비해 낮은 수준을 떨어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아진 것은 투자재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등 구조개선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이자율 하락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 감소 등이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표상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외환위기 이전보다 크게 개선되지 않았지만 순이익이나 현금 흐름 등이 현저히 나아졌다고 주장했다. 이에따라홍 교수는 기업들이 재무 건전성으로 유지하면서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소득·주택 부문
정부 잦은 개입으로 노사관계 뒷걸음질

서울대 경제학부 김대일 교수는 우리 노사관계가 상생관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시장 안에서의 치열한 기업 경쟁 체제가 정착되지 못하고 오히려 기업의 시장 독점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기업이 시장에서 첨예한 경쟁을 하게되면 자연스레 노사가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이에 따라 노사관계가 선진화된다는 논리다. 김 교수는 특히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부실기업 맞교환(빅딜) 정책을 펴면서 대기업의 시장 독점이 심화됐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로 인해외환위기 이후 금융이나 기업 부문에서는 성과를 거뒀지만 유독 노동시장에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동안 정부의 노사정책은 법과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노사갈등이 사회 문제로 비화될 때마다 개입해 정치적 타협을 요구했다"며 "노사 모두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정리해고를 법제화하는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를 대거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들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을 활성화하고 시장 친화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신동균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의 소득의 변화 추이는 단순한 소득 불평등이라기 보다는 양극화의 심화를 보여주고 있다"며 "근로소득 보다 부동산 소득 등 비근로소득의 급격한 차이가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이같은 양극화 문제를 단기적인 경기부양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산층의 쇠퇴를 의미하는 양극화는 단순한 불평등이 아닌 분리된 두 집단의 갈등 양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잠재적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치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우리 사회의 소득 분포를 볼 때 최상층은 부동산 소득, 최하층은 정부가 지원하는 이전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며 "따라서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비근로 소득에 대한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가격 안정을 위해 관련 세금를 높이는 등 강력한 주택정책 펼쳐왔다. 동시에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노력했지만 주택 수요가 집중된 지역에 대한 공급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서강대 경제학과 김경환 교수의 주택정책에 대한 평가다.

그는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시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분양가 상한제, 재건축 규제 등을 통해 민간 부문의 공급을 억제하고 토지공사나 주택공사 등의 역할을 확대하는 접근 방식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2002년 이후 집값 상승의 주 요인은 지역별 수급 관리 실패를 꼽을 수 있는데 정부는 투기수요 억제와 총량적 접근 방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했다"고 비판했다. 즉, 정부가 집값 상승의 원인을 저금리와 과잉 유동성에서만 찾은 결과 서울 강남 등 급등지역에 대한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그는 "보유세와 양도세를 대폭 올린 결과 부동산 관련 세금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에 달했다"며 "과도한 세금이 주거이동의 기회를 제한하고 주택시장의 왜곡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분양가 규제와 분양원가 공개 등은 주택사업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중장기적으로 양질의 주택 공급 체제를 흔들고 있다며 과도한 시장 개입이 가격 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도한 부동산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부동산 세제 역시 가격 안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조세의 기본 원칙에 따라 운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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