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투자지원 숫자놀음인가/박태욱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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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러 신문을 보는 사람이라면 정부가 20일 발표한 설비투자 촉진대책에 따른 자금지원규모가 보도마다 달라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똑같은 대책을 놓고 적게는 1조원에서 많게는 5조원 이상까지 보도가 나갔으니 독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게끔 됐다.
이번 대책에 포함된 금융지원을 그대로 열거하면 ▲올 하반기용 외화대출 10억달러 ▲내년 상반기용 외화대출 30억달러 ▲외화표시 국산기계 구입금융 1조원 ▲수출산업설비자금 1조원 ▲4·4분기 유망중소기업 설비금융 2천5백억원 ▲산은관리자금중 용도가 전용된 2천3백억원 등으로 이를 모두 합하면 약 5조6천억원(1달러=7백80원)이 되며 이것이 기획원이 설명하는 지원규모다.
그러나 이중 30억달러는 단지 시기만을 앞당긴 것에 불과하므로 이를 제외하면 3조2천8백억원이 되고,또 산은자금중 용도만 바뀐 2천3백억원을 빼낸 3조5백억원이 되며,이것이 재무부가 밝히고 있는 지원규모다.
이 3조5백억원중에서도 10억달러의 외화대출은 이미 증액책정돼 집행되고 있는 상태며 수출산업설비금융 1조원도 새로운 자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이제까지 잘 나가지 않고 있는 것을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확대를 통해 제대로 지원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고 보면 이번 대책에 따른 새로운 자금지원인양 말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엄밀히 따질 경우 이번 대책으로 신규지원되는 자금은 외화표시 국산기계 구입자금 1조원과 4·4분기중 유망중소기업에 지원키로 한 설비자금 2천5백억원을 합한 1조2천5백억원으로 보는 것이 옳고 조금 넉넉히 잡는다해도 신용보증확대로 자금공급의 「실질적」증가가 기대된다는 수출산업설비자금 1조원을 합한 2조2천5백억원 정도로 봐야 한다.
이렇듯 이런저런 지원책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돼 있고 기획원과 재무부가 서로 다른 설명을 하는 상황에서 「제목을 뽑아내야 하는」신문들은 보는 각도에 따라 갖가지 계산을 내놓게 됐다.
이번에 발표된 설비투자촉진대책은 최근의 설비투자동향에 대한 정부의 기본인식과 경제의 안정기반 정착이라는 정책기조하에서는 애당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으며 그같은 상황인식과 대책의 수준은 옳았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가 고심끝에 마련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보다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시도한 「숫자놀음」의 구태때문에 정부의 올바른 상황인식과 대책의 내용이 왜곡전달되지 않을지 그것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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