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정호용의원/김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치부기자 사이에 정호용의원은 「호랑나비」 또는 「호용장군」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 호랑나비는 날개가 크고 색깔이 짙으며,호용장군은 고구려 장수쯤을 연상시킨다. 듣기 괜찮은 별명인 셈이다.
이런 표현은 뭔가 뚝심있는 「싸나이」같은 그의 초기 이미지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를테면 흔들림 많은 정치판에서 고집과 일관성이 다소 돋보였다는 의미다. 그는 5공 청문회 증인석에서,4·3 대구서갑 보궐선거때 한때나마 고래심줄처럼 버틴 적이 있다. 중간에 좌절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14대엔 무소속 압승을 거두었다. 이같은 고집덕에 어느정도의 대중적 지지도 확보했다.
그러나 「호랑나비」 정호용은 아무런 탄압이나 방해가 없던 지난 3∼4개월간 이미지가 많이 변질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동안 보여준 정치적 행보와 신당불참을 선언한 19일의 기자회견은 「호용장군」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이었다.
14대 총선후 그는 무소속동지회를 이끌면서 양김의 대권정치를 신랄히 비판했었다. 국회가 열리지 못하자 『국회가 양김의 흥정대상이 되고 있다』고 목소를 높였었다.
그러면서 그는 신당추진세력과 만나 신당을 논의했다. 9월에 들어 그의 보좌관은 『정 의원이 신당참여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한편으로 민자당을 저울질했다. 그가 적절한 예우(최고위원)를 요구했다는 점도 확인됐었다. 또다른 측근은 『정 의원은 민자당에 갈 생각을 굳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 의원 답지않게 왔다갔다 한다는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박태준씨가 민자당을 탈당하자 그는 신당창당의 주역급으로 등장했다.
그러던 그가 19일 신당불참을 선언했다. 「양김의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에 덧붙여 신당세력엔 「대가리」가 너무 많다고 원색적인 비난까지 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오해」를 언론탓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기자를 만나주지 않자 섭섭히 여긴 언론이 자기를 골탕먹이기 위해 신당행을 왜곡보도했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이자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박태준씨 경우에서도 보았듯이 우리 정치판에는 개인적 이해를 기준으로 지나친 눈치보기와 기웃거림을 예사로 하는 풍조가 번지고 있다. 대의를 지키는 기개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양식마저 업신여기는 정치인은 「호랑나비」일 수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