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고 수려한 맛과 멋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호 29면

와인을 마시며 느끼는 즐거움 중 하나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와인 중 가격 대비 좋은 품질의 와인을 찾아가는 일이다. 필자 역시 와인 테이스팅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객관적으로 좋은 와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주의점 하나. 내 입맛에 맞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와인에 대한 취향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와인 시음기-‘지로라트’

오늘 소개해드릴 ‘지로라트’는 가격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는 와인이다. 국내 수입이 성사될 뻔했으나, 명성에 비해 비싸다는 이유로 수입되지 못한 애석한 사연이 있는 와인이다. 와인을 아끼는 애호가의 입장에서 이런 알려지지 않은 맛있는 와인이 단지 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 곁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한국 와인 시장이 성장하려면 이런 와인을 다양하게 수입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필자는 세 가지 빈티지를 시음해 보았는데, 가격 대비 가장 인상깊었던 건 2002년산 빈티지였다. 2002년 빈티지의 경우는 보르도 와인의 대부분이 피해가야 하는 빈티지 중 하나라고 보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빈티지에 상관없이 와인을 잘 만드는 메이커들은 2002년 역시 뛰어난 질의 와인을 생산했다. 오히려 이런 빈티지는 평균 가격이 내려가므로 가격 대비 좋은 퀄리티의 와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짙은 루비 색에 젊은 느낌이다. 부드러운 바이올렛 느낌의 꽃 캐릭터로 시작한 향기는 점점 과일 캐릭터로 바뀌어 간다. 처음에는 부드럽지만 갈수록 강해지는 향기가 보통 와인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아직 어린 빈티지들이 많아서 지금 테이스팅한다면 어떤 빈티지라도 두 시간 이상의 디캔터 브리딩이 필요하다. 부드러운 육질의 송아지 요리나 양고기가 좋은 음식 궁합. 기본 10년은 지나야 좋은 맛을 내는 와인일 듯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