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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그루밍’ 法 제정 서둘러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호 13면

가출한 여중생(14)을 6개월 동안 모텔에 감금하고 성인 남성 1000여 명을 상대로 성매매하도록 강요한 혐의로 20대 남녀 3명이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여중생이 상대한 남성들 가운데는 교수ㆍ의사ㆍ법조인ㆍ공무원 등 소위 사회지도층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이들은 “성매매를 강요받고 있으니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신고했다가는 나도 걸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중생은 모텔 주인과 음식점 배달원을 봤으나 보복이 두려워 구조요청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성매매를 알선하고 이에 응한 성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분노가 끓어오를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성매매의 알선 수단이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인터넷은 필수품이다. 동시에 인지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는 위험이 잠재되어 있는 곳이다. 특히 인터넷 채팅을 통해 ‘원조교제’를 시도하는 경우에는 일정한 물리적 거점이 있는 성매매보다 예방과 단속이 훨씬 어렵다. 더욱이 요즘 ‘선수’들끼리는 누구도 ‘원조교제’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매너만남’ ‘조건만남’ 따위의 말을 쓴다. 이보다 한 단계 진화한 ‘ㅈㄱ(조건만남)’ ‘ㅇㅁ(엔조이만남)’ ‘ㅅㅇ(스킨십알바)’ 등의 암호가 쓰이기도 한다. 집창촌과 같은 성매매의 주요 공간이 각종 규제에 묶이면서 인터넷을 통해 성을 사고파는 방법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월 초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한 달간 성매매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 사범 172명 중 155명(90.1%)이 인터넷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경향은 영국ㆍ미국ㆍ뉴질랜드 등 서구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미국의 한 연구기관 자료를 보면 10~17세 청소년 5명 중 1명이 온라인상에서 원하지 않는 성적 접근이나 유혹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영국은 인터넷으로 아이들을 유인하는 성인을 단속하기 위한 법률을 만들었다. ‘온라인 그루밍(grooming)’ 법이다. 온라인 그루밍이란 아이들에 대한 성적 호기심을 지닌 소아기호적(小兒嗜好的) 범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아이들을 성행위에 동참하도록 유인하는 행동이다. 이들 소아기호적 범죄자들을 단속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경찰이 온라인 채팅방에서 아이로 위장해 함정수사하는 것을 허용했다. 뉴질랜드도 유사한 법을 제정했다.

온라인 그루밍 법에서는 함정수사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단속할 수 있는 범죄의 유형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아이들이 성매매 혹은 성폭행의 대상이 되기 전에도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 법이 제정되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집단은 ‘넷세이프(Netsafe)’라는 부모들의 모임이었다. 자식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부모들은 온라인상에서 청소년이 겪는 위험요소들을 지속적으로 탐지했다. 그러한 부모들의 정성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인터넷 포털사이트가 청소년 위해(危害) 정보를 자정(自淨)하기 위해 음란물 필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도 온라인상에서의 그루밍 행위에 대응하고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자녀들이 인터넷 환경에서 안전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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