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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공개 전시 땐 작가 허락 받아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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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13면

해마다 새 학년 준비를 교과서 표지 싸는 것으로 시작한 적이 있었다. 그때 책 표지로 안성맞춤은 빳빳한 달력 종이였다. 용도 폐기되는 달력이 이처럼 훌륭하게 재활용되었는데, 최근 달력이 다시 재활용되고 있다. 유명 화가의 작품 사진을 활용한 대기업의 판촉용 달력을 해가 지나도 벽에 걸어놓는 경우가 그런 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의 어느 병원에서 달력의 사진을 오려 액자로 만들어 병원 벽에 붙여놓았다가 작가로부터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쟁점은 작가가 달력에 자신의 작품 사진 게재를 허락한 경우, 사진만을 절단해 따로 전시하는 것이 허락된 범위를 벗어나느냐였다.

1심 판결은 비록 달력에서 사진만을 오려냈다 하더라도 사진은 달력의 일부임에 변함이 없으므로 달력을 전시하는 형태로 사진을 전시한 것은 이용 허락 범위 안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1심 결론을 뒤집고 작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달력에서 분리된 사진을 통해서는 날짜ㆍ요일을 전혀 알 수 없으므로 달력의 일부라고 할 수 없고 독자적인 사진 예술품으로 인식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데는 인쇄기술의 발달로, 달력에 게재된 사진과 판매용 작품 사진의 구별이 쉽지 않다는 점이 크게 고려됐다.

물건을 구입한 사람이 그 물건을 어떻 게 이용하건 판 사람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미술작품ㆍ사진작품과 같은 저작물은 소유자라고 하더라도 경우에 따라 소유권 행사가 제한된다. 우리 저작권법은 “가로ㆍ공원ㆍ건축물의 외벽 그 밖의 일반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하는 경우에는 그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라고 함으로써 소유권자와 저작권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있다(제32조 1항).

이 사건에서 병원장이 사진 액자를 자신의 집 안에 걸어놓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 공중이 이용하는 병원 복도에 걸어놓았기 때문에 소유권자라고 하더라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았어야 했던 것이다.

최근 한 아파트 건설회사가 서울 강남의 오크우드 호텔 1층 라운지에 설치된 ‘평원을 질주하는 말의 군상’을 형상화한 작품을 배경으로 아파트 TV 광고를 촬영한 것이 문제되어 소송으로 비화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호텔 라운지가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에 해당하느냐였다.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되어 있는 미술 저작물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를 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제32조 2항).

재판부는 호텔 라운지가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가 아니어서 마음대로 촬영 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건설사ㆍ광고대행사가 작가에게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여기에서 병원과 호텔을 다르게 볼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저작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호텔을 ‘일반 공중에 개방된 장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 아니라, 같은 조항에서 자유이용의 예외로 들고 있는 ‘판매의 목적으로 복제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아 건설사ㆍ광고회사의 항변을 배척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TV 광고를 위해 촬영하는 것도 넓게 볼 때 복제에 해당하는 것이고, 광고대행사는 광고주에게 판매하기 위해 광고를 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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