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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3대강 유역 고고학 기행(5)몽고 접경 지대 우코크-고분서 쏟아진 빗살무늬 토기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산간지대 알타이」란 의미의 고르노 알타이 중 최남단에 위치한 우코크는 노보시빌리스크시에서 동남쪽으로 1천2백㎞떨어진 중국과 몽고의 접경지대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헬리콥터가 유일한 수단이며 6시간정도 걸린다. 중간에 연료를 보충하기 위해서 알타이 산맥 중에 있는 악타시나 비스크라는 군사기지에 잠시 머물렀다.
시베리아의 구석기연구센터인 데니소바기지도 노보시빌리스크에서 우코크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기착점 중의 하나다. 알타이산맥을 포함해 시베리아지역이 넓으며 전인 미답지가 참으로 많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고르노 알타이의 산간지대는 평균해발이 1천2백m인데 몽고와 중국(신강생)의 접경지대인 우코크는 2천2백m다. 그중 비르텍은 해발 2천2백∼2천 3백m 정도다.
이곳은 몽고의 국경선을 이루고 있는 가장 높은 만년설의 봉우리 타반-보고도-올라(해발4천82m)를 중심으로 해 주위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초원지대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하던 날도 산에는 눈이 왔다. 날씨는 새벽녘 영하로 내려갈 정도로 매우 추웠다가 점심 무렵이면 러닝셔츠만 입어야될 정도로 더워지고 그러다가 곧바로 비가 오는 등 매우 변덕스럽다. 이러한 날씨에 적응하기 위해 「반야」라고 하는 러시아식의 독특한 목욕탕이 생겨나게 되었나보다. 이것은 대개 목조로 지어진 사우나탕으로 밖에서 불을 때 열기를 안으로 들여보내고 그 안에서 더운 열기로 몸을 데워 땀을 흘리면서 목욕을 하는 방식이다.
중간중간 몸을 식히기 위해 바로 옆에 흐르고 있는 오브강의 최상류이자 거의 영하에 가까운 아크하라강에 알몸으로 뛰어드는 맛은 어떤 것에도 비길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흰강이란 의미의 눈 녹은 아크하라 강물은 우유빛으로 맛도 있고 목욕을 하면 피부도 매끄러워진다.
이번 답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러시아의 4대강 중 아무르, 예니세이, 오브의 세강에 틈만 나면 뛰어들어 원없이 수영했던 점이다.
작년 이곳 우코크의 비르텍지역과 「바보의 돌」이란 의미의 쿠트르 쿤타스지역에서 발굴조사가 있었다.
이곳에는 일본인을 비롯해 미국·벨기에와 프랑스인들로 들끓었다. 특히 일본인들은 일소문화협정에 의해 정식으로 발굴단을 보내 저력을 과시했다. 많은 수의 기자단을 비롯해 경도대학 졸업생을 주축으로 하는 교수급의 「북방 유라시아 학회」회원 수십명이 발굴단에 참가하고 있었으며 대형 굴삭기를 비롯해 스쿠터와 자동차도 본국에서 운반해 오고 심지어는 목욕하고 먹을 물까지도 공수해왔다.
발굴된 쿠르간 봉토분은 이미 도굴된 것이어서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발굴중 그들의 뽐내는 모습은 볼만했다. 발굴결과는 NHK방송국이 1시간짜리 기록영화인 『수수께끼의 기마민족』으로 만들었으며 이것은 NHK텔리비전 방송을 통해 지난 3월 6일에 방영됐다.
그러나 올해는 러시아 고고학자들과의 갈등으로 일본학자들은 전혀 참여하지 않고 단지벨기에만이 유일한 외국팀으로 이곳에 수개월 체재하면서 스키타이, 흉노와 터키의 무덤·제단 4기 등을 발굴했다.
그중에서 서기전 3세기 파지리크의 후기에 속하는 흉노족의 무덤에서 중국의 도자기·봉니인장, 그리고 60세쯤의 여자가 묻힌 서기 8세기경의 터키무덤에서는 나무빗과 함께 직경 8㎝의 중국제 구리거울과 은제용기를 비롯한 여러가지 학술적 가치있는 유물이 많이 출토됐다. 그래서 이곳 우코크지역이 흉노-오르도스-중국을 잇는 비단길의 전신으로 동서문화 교류의 중요 요충지의 하나임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이곳 우코크지역에서 발굴의 주 대상은 무덤이란 의미를 지닌 쿠르간과 이에 관련된 제사터다. 유적은 아파나시예보 문화로. 일컬어지는 시베리아의 신석기말∼청동기초기의 무덤, 파지리크라는 스키타이인의 무덤 그리고 흉노와 터키인들의 무덤이다.
신석기시대말에서 청동기시대초에 걸친 아파나시예보문화에 속하는 고분 6기도 발굴이 됐다. 그중에서 직경 14m나 되는 큰 봉토분(서기전2000∼1500년)이 발굴 됐는데 그 안에 부부와 어린아이 등 3인의 가족이 매장돼 있었다. 흥미있는 것은 그 속에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꼭 같은 문양의 토기편이 나오고 있는 점이다.
좀더 이 근처를 자세히 조사한다면 무언가 우리문화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가 풀려질 것으로 기대된다.
스키타이인들이 이곳 우코크에 살던 시기를 정점으로 그 이전에는 주로 백인종이, 그 이후에는 황인종들이 살게 되었다. 그러나 반드시 우코크가 그들이 살던 중심지는 아니다. 근처의 파지리크·베렐·우란드릭·우스디드·시베·투에크타·바샤다르·카탄다 등지에서 발견되는 수천기 이상의 쿠르간 봉토분을 볼 때 파지리크를 중심으로 하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스키타이인들이 초기인 서기전 9∼7세기부터 살아왔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이들은 서기전 2세기경 흑해 북안에 왕국을 세울 정도로 강성해진다.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서기전484∼424?)가 그들의 정화의식을 포함한 여러가지 모습을 저서인 『역사』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페르시아제국의 수도인 아바단의 페르세폴리스왕궁(서기전 5세기)의 벽장식에도 아르메니아·박트리아·아프가니스탄과 페니키아인들과 함께 머리끝이 뾰족한 고깔형의 모자를 쓴 스키타이인들도 부조로 장식되어 있을 정도로 스키타이인들은 당시에도 잘 알려진 종족이었다.
따라서 서기전 9∼7세기부터 스키타이인들이 이 광활한 초원을 왕래하면서 백인종및 황인종과 혼혈되기 시작했다. 이곳은 그만큼 백인종·황인종들이 교대로 살아왔던 중요한 곳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후일 콘스탄티노플-알마아타-카라코룸을 잇는 비단길의 일부를 형성하게 됐다.
이번에 비르텍지역의 아크하라에서는 서기전 8∼7세기 파지리크 초기의 쿠르간(2호)이 발굴되었다. 이것은 나타리 폴로시마즈 박사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무덤안에는 6∼7세 가량의 소년이 금관과 목걸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금제 장신구를 몸에 걸치고 있었다. 이는 1929년그랴즈노프에 의해 발굴되고 1947년 루덴코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전세계에 알려진 파지리크고분의 발굴 이후 처음으로 나온 화려하고 완전한 유물이다.
봉분의 규모도 직경 20m나되며 그 구조는 파지리크의 여러 다른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신라의 적석목곽분과 비슷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여하튼 금년 우코크 지역에서 행한 발굴 중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빗살무늬토기와 꼭 같은 문양을 가진 토기편이 아파나시예보문화에 속하는 무덤에서 나오고 또 근처에서 우리나라 신석기·청동기시대에 흔히 보이는 갈돌과 갈돌판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유물들이다. 이것은 신라의 적석목곽구조가 나타나는 파지리크 쿠르간 봉토분과 함께 우리문화의 원류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의 하나로 삼아야겠다.
또 아울러 흉노와 터키의 고분에서 보이는 중국의 도자기·구리거울과 인장 등은 이곳이 동서문화 교류의 교차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해 주고 있다. 【최몽룡 교수<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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