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피아노 한 곡, 이야기 한 자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이경숙의

1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2만~4만원. 02-580-1300.

베토벤 소나타 32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개, 모차르트 소나타 19개, 프로코피예프 소나타 9개, 차이콥스키 협주곡 3개. '전곡(全曲)연주의 여제'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이경숙(63.연세대 음대 학장)씨가 '정복'한 작곡가들이다. 이씨는 한 작곡가의 모든 작품에 도전하는 것으로 유명한 연주자다. 대부분의 전곡 연주는 국내 최초였다. 음악평론가 고(故) 한상우 선생은 "이경숙의 등장이 한국 음악계에 전문연주자 시대의 문을 열었다"고 했다.

이처럼 학구적이고 열정적인 이씨가 이번에는 사람 냄새 짙은 무대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예순을 넘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무대다. 피아노와 함께한 50여 년의 세월을 크게 둘로 나눴다.

'대화 1945~1984'라는 부제를 단 지난달 19일 연주회에서 이씨는 마이크를 들고 10~30대 시절의 이야기와 음악을 편안하게 풀어놨다. 꼬마 피아니스트 시절로 돌아가 '피아노 명곡집'에 나오는 '소녀의 기도'와 소나티네를 연주하며 한 곡 한 곡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지에서 참가한 첫 콩쿠르에서 바흐의 인벤션을 연주한 일과 전쟁통에 악보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사연 등이 재미를 더했다.

공연이 열리는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은 350석 규모.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좁아 '대화'를 나누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번 달 공연은 40대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다. 늦둥이로 얻은 딸 김규연(22)씨는 엄마를 닮아 심지 굳은 피아니스트로 성장하고 있다. 모녀가 피아노 한 대에 같이 앉아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씨가 수십 년째 음악을 붙들 수 있게 한 힘이 가족에 대한 사랑임을 보여 주는 무대가 될 듯하다.

김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