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각제를 생각해보자(송진혁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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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공 5년이 저물어가고 새 대통령의 선출을 눈앞에 둔 정치사의 큰 굽이를 맞아 우리는 한번쯤 이런 물음을 던져보고 답을 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난 5년의 경험으로 볼때 5년 단임대통령제는 과연 괜찮을 것인가,앞으로도 계속 해볼만한 것인가. 이 제도로 남은 90년대를 성공적으로 넘길 수 있을 것이며 21세기를 자신있게 맞을 수 있을 것인가. 지난 5년을 돌이켜 보고 맞이할 5년을 내다보면서 이런 문제를 한번쯤 심사숙고해 보고 필점과 결함이 있다면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제도취지 못살린 5년
우리가 단임대통령제를 채택한 것은 장기집권을 막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보장하면서 대통령제의 장점으로 믿어져온 강력한 지도력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고 보통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5년 이런 취지는 살려졌는가.
단임제의 취지는 충분히 발휘된게 분명하다. 곧 대선이 있고 내년 2월 정권교체가 있을 것임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임기의 막판에서 단임제가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알게됐다. 임기제 대통령 정부에서는 으레 있는 현상이지만 임기말 증세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겪고있는 경쟁력 약화·사회불안·기강해이 등은 결코 되풀이 돼서는 안될 일임이 분명하다. 5년마다 「제도적」으로 임기말 증세를 겪는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난 5년이 강력한 지도력을 보장한다는 대통령제의 장점을 살렸다고는 더욱 생각되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르겠지만 6공에 대한 일관된 고난은 지도력 부족이었다. 정책과 인사가 왔다갔다 하고 필요한때 결단이 안나온다는 아우성이 끊일새가 없었다. 지도력이 안나온 원인으로는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37% 지지율로 성립된 소수파 정권이었다는 점,임기초반의 여소야대,잘못된 3당통합,대통령의 개성… 이런 요인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때 단임대통령제는 지난 5년간 장점은 충분히 살리지 못한채 임기말의 급격한 권위약화­임기말 증세라는 결함만 보인게 아닌가.
그렇다면 현재의 정치상황으로 미루어 두번째 단임대통령은 이런 약점이나 결함을 되풀이 않고 잘 굴러갈 여건이 돼있는가.
그 전망 역시 별로 신통치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현 정치세력들이 너무나 국민에게 인기가 없다. 어느 후보도 20%대 이상의 지지를 못받고 있고 이대로 간다면 다시 소수파 정권이 나올 판이다. 제2,또는 제3당이 집권하면 여소야대도 재현된다. 지금처럼 국민의 불신을 받고,지금과 같은 도덕적·지적 수준으로는 어느 정치세력이 대통령을 맡아봐야 효율적 국가경영이나 강력한 지도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임기말 증세의 제도화
결국 단임대통령제라는 좋은 제도도 이 나라의 이런 정치상황에서는 장점을 살리지 못했고 앞으로도 살리기 어렵겠다는 비관적 전망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불가피 하게 다른 선택의 여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선택이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듯이 그것은 내각제일 것이다.
내각제는 한때 불투명한 꼬리표가 붙은 적도 있지만 이젠 그런 시절은 지났고 순수하게 우리 현실과의 적합성을 따져 볼 때도 됐다고 본다.
내각제라면 우선 두가지는 해결할 수 있다. 내각제는 항상 의회다수파의 지지위에 정권이 유지되므로 소수파 정권의 우려는 없다. 또 항상 다른 다수파가 등장해야 정권을 내놓게 되므로 대통령제와 같은 임기말 증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대통령제=정국안정」이 아니듯이 「내각제=정국불안」이 아님은 이제 누구나 아는 일이다. 오히려 내각제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융합체제이기 때문에 운영에 따라서는 대통령제 이상의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각제에서는 임기가 신축적이므로 임기가 고정된 대통령제에서 겪는 고통은 없을 것이다. 임기제 대통령 정부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정부가 아무리 싫고 미워도 국민으로서는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실정을 해도 5년,죽을 쑤어도 5년을 참을 수 밖에 없다.
반면 잘못하면 1년만에라도 나가게 하고 잘하면 영국의 대처 전총리나 서독의 콜총리처럼 10년 집권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각제다. 과거 5공이 내각제였다면 「장 여인사건」이나 「박종철사건」때 당연히 내각 총사퇴론이 나왔을테고 그렇게 됐던들 국운이 얼마나 더 뻗었겠는가.
○1인 독제로는 안돼
이제 우리사회도 엄청나게 복잡·다양해지고 고도의 전문화로 나가고 있다. 어떤 한사람의 영명한 지도자나 「백마의 기사」가 이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일거에 풀어줄 수는 없게 돼있다. 대통령 1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국민은 속만 태우면서 쳐다보는 체제로는 이 나라를 이끌어가기 힘들다.
게다가 이제는 멀잖게 느껴지는 통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1인의 독제주의라 할 대통령제로서는 남북동포가 융합하는 정치체제를 형성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만 하겠다는 후보뿐이지만 그들 역시 그들이 노리는 대통령제의 익점에 착안하고 개선책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누가 집권하는 임기중에 다시 다른 선택지로서의 내각제 논의는 제기돼야 할 것이다.<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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