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비극과 백인의 시각/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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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누군가가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 같았으며 마치 세계의 종말,신이 기억에서 지워버린 땅을 보는듯 했다.』
최근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돌아온 데이빗 앤드루스 아일랜드 외무장관의 소감이다.
내란과 가뭄으로 4백50만 소말리아인이 죽어가고 있다. 하루 3천∼4천명이 굶어 숨져가고 있고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인구의 3분의 1이 아사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골이나 다름없는 소말리아 어린아이들의 참혹한 모습을 TV화면을 통해 전하면서 21세기를 눈앞에 둔 현대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당혹감과 함께 서구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중적 가치기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이 지적했듯이 소말리아의 비극에 비하면 유고사태는 「부자들의 전쟁」이다. 희생자수만 놓고 볼때 소말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훨씬 더 비극적이다. 그런데도 서구의 근심은 온통 유고에 집중되고 있다. 소말리아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관심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지역적 거리차를 얘기하고 있다. 유고는 유럽에 속해 있으므로 유럽이 유럽문제에 우선적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런 주장을 하는 유럽사람들은 흔히 덧붙인다. 소말리아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아프리카사람들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자기들이 유고문제에 매진하고 있는 것처럼.
소말리아문제에 대한 아프리카권의 무관심을 생각할때 틀린 얘기는 물론 아니다. 그러나 서구 제국주의의 각축장이 됐던 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유고와는 달리 지난 18개월동안 소말리아에는 비한방울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동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식으로 쉽게 자기합리화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소말리아는 냉전의 희생물인 측면도 있다. 한때 미소는 중동과 홍해연안에 대한 전략적 요충지로 소말리아의 가치를 높이 평가,각축을 벌였으나 냉전종식과 함께 그 가치가 상실되자 안면을 바꿔버렸다. 소말리아의 내전은 그 결과이기도 하다.
유고인은 유럽인이고 같은 백인이며 소말리아사람은 흑인이라는 인종적 2중기준때문이 아니라면 서구가 소말리아에 대해 보이고 있는 무관심에 가까운 냉담함에 대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걸핏하면 인류의 행복과 번영을 얘기하는 서구인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행복과 번영은 백인만을 위한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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