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회」(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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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눈부신 갈기를 휘날리며 힘차게 초원을 달리는 준마들을 보면 우리의 마음이 후련해지면서 어떤 감동마저 느끼게 된다. 잃어버린 원시에의 향수가 아니면,먼 옛날 기마생활을 하던 야성의 습성이 몸에 배 그런지도 모른다.
인류의 역사속에는 일찍부터 말이 등장하며 경마의 역사 또한 길다. 뉴욕의 매트러폴리턴 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기원전 2000년께의 이집트 경주마 조각을 봐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경마를 도박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랍인들이다. 품종이 좋은 말을 일찍부터 사육한 아랍인들은 고대부터 말을 이용한 장거리경주로 도박을 했다. 프랑스에서도 도박경마는 황야를 달리는 장거리경주였다. 1389년 샤를6세와 트렌공의 명승부는 지금도 유명하다. 그러나 경마도박의 본고장은 아무래도 영국을 꼽는데 1599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신사의 놀이였다. 마주는 물론 기수도 신사가 독점했다. 18세기말 경마로 10만파운드라는 재산을 탕진하고 빈털터리가 되어 죽은 포레이라는 귀족의 부음기사를 당시의 더 타임스신문은 이렇게 실었다.
『퀸스베리공작은 엡슨 레이스에서 가장 돈을 많이 잃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마차와 여섯필의 말,그리고 가엾은 두명의 미녀를 잃었다.』
그 신사의 놀이 경마가 지금은 일부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들에 의해 복마전이 되었다. 오죽하면 경마가 있는 곳엔 사고가 있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경마사고에는 기승사고·발주사고·심판사고·발매사고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부정경마와 관련된 기승사고. 경주마의 관리자인 기수·조교사 등에 의한 금품수수·약물투여 등이다. 금품수수를 일본에서는 야오초(팔백장)라 한다. 사전에 정보를 누설해 부정을 저지른다는 뜻이다. 약물투여는 영어로 도핑(doping). 경주마에 흥분제나 마취제를 먹이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같은 불법 약물투여로 죽는 말이 한해 35마리나 된다. 그러나 말뿐만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경마회소속 조교사 두명이 경마와 관련된 부정사건 조사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났다. 안그래도 말썽많은 마사회가 복마전같은 「마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차제에 사건전모를 철저히 밝혀내야 할 것이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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