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패산 터널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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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조계종 법전 종정 스님을 찾아가 사패산(북한산) 터널 문제를 매듭지은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잘한 일이다. 지난 2년간 환경단체와 연대해 터널 공사를 중단시켰던 불교계가 대통령의 간곡한 협조 요청을 받고 대승적 견지에서 이를 수용한 것도 다행스럽다. 盧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새만금사업.핵폐기장 건설 등 다른 국책사업들도 더 늦기 전에 확고한 방향을 잡아 이 같은 가시적 성과를 얻도록 진력해야 한다.

이로써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사패산 문제는 해결의 전기를 맞았지만 그 과정은 문제 투성이였다. 무엇보다 전임 정부 때 시작된 국책사업을 정략적으로 접근한 盧대통령의 자세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盧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이 임박한 12월 초 조계종 총무원을 방문해 '북한산.천성산.금정산 기존 노선 백지화, 대안 노선 검토' 등 불교계 10대 공약을 발표했다. 스스로 밝힌 바처럼 현실을 도외시한 득표 공약이었다. 그것을 거둬들이려다 보니까 또 다른 위약(공론조사)을 하게 돼 일만 더 꼬이게 했다. 이러니 국정 운영에 대한 신뢰의 기반은 점점 더 약화될 뿐이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국책사업을 놓고 수시로 입장을 뒤집는 것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처신이다. 이렇게 갈팡질팡하니 공사 중단으로 5천억원 정도의 추정 손실액이 발생하고, 터널 공사 구간에 출자하기로 한 일본은행에서 공사 재개 여부를 알려 달라는 최후통첩까지 받는 국가적 망신을 초래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 제 세력 간의 불필요한 분란만 야기했다.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처리하는 참여정부의 능력이 수준 미달임은 새만금사업.위도 핵폐기장 추진 과정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부는 집단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국책사업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전 합의 도출 과정을 거치되 일단 결정된 사안은 흔들림없이 집행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세워야 한다. 국책사업을 둘러싼 극심한 집단 갈등과 국력 소모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