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 이득 기대하기 어렵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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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엔고) 여부로 일희일비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7년전 국제외환시장에서 나타난 엔고와 지금의 엔고를 둘러싼 국제 경제환경이 달라졌고 일본의 경제구조 또한 변화를 겪었다. 단기간에 엔화값이 미화 달러당 1백20엔대까지 치솟는 최근의 강세국면을 국제금리 하락기대 등과 겹쳐 3저국면의 도래,또는 85년 상황의 재현쯤으로 간주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85년 선진 5개국 정상들의 엔고에 관한 플라자합의 이후 세계의 통화정세는 지금까지 달러 본위제로부터 달러 및 독일 마르크와 일본 엔 등 3개 기축통화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불협화음이 있었다. 1주일 전부터 빚어지고 있는 유럽의 통화위기 역시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으며,국제통화기금이나 선진7개국 재무장관 회담 및 유럽공동체의 관계장관 회담에서조차 통화안정에 관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다. 유럽의 통화협조체제 붕괴가 자칫 세계적인 혼란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엿보인다.
미국의 경제적 기초조건은 너무 나쁘고 유럽의 통화는 당분간 불안국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 각국의 기관투자가들이 가장 안정적인 일본 엔화 매수로 몰리면서 엔고의 가속화로 이어졌다. 선진국들은 국제통화 안정책의 일환으로 엔화의 평가절상을 용인하고 있으나 그 수준이 달러당 1백10엔대까지 뛰어넘어갈 것인지,또 엔고기간이 어느 정도 지속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제외환시장에서의 이같은 변화에 의해 우리나라 원화가치가 평가절하 된다고 해서 경제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일본의 엔화는 85년 달러당 2백41엔에서 87년 1백22엔까지 무려 96%나 평가절상 됐다. 위기의식이 대두되면서 일본의 각 경제주체들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단합된 정신을 보여 해외전략,코스트 절감,신산업분야 진출 등 고통스러운 산업구조 조정을 겪었다.
그때는 우리나라의 많은 섬유제품뿐만 아니라 가전품과 일부 기계류까지 환율에 따른 가격경쟁력 회복으로 대일수출이 늘어났다. 그러나 지금 다시 엔고현상이 장기간 지속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제품이 일본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틈은 적다. 일본 산업의 틀이 바뀌어졌고 그들의 생산성은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우리의 대일의존적 산업체질은 엔고에 의한 이득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의 재정 및 무역적자 확대에 따른 달러화의 급락우려와 유럽의 환율혼란 등으로 내년도 세계경기 전망은 불투명하다. 이럴수록 우리의 경제정책은 효율 및 경쟁력 향상을 위주로 대전환을 서둘러야 하며 국제경쟁에 불리한 요소들을 제거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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