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70代 경제원로 "우리는 평생 현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5면

한국에선 명예퇴직 연령이 30대까지 낮아졌지만 미국 경제계에서는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현역에서 왕성하게 일하는 사람이 많아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의 모리스 그린버그 회장은 78세다. 그는 팔순을 눈 앞에 둔 지금도 몸매 관리에 신경쓰면서 테니스를 치고 스키를 즐긴다. 일주일에 엿새를 근무할 정도로 정력적인 활동가다.

하지만 후계자 얘기는 피한다. 은퇴할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AIG 창업자에 의해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된 이후 35년간이나 직원 8만명의 회사를 틀어쥐고 있다. 그린버그는 자신의 나이를 걱정하는 투자자들에게 "생리적인 나이는 실제보다 25세는 적다"며 "행상을 했던 우리 증조할머니도 1백8세까지 일했다"며 기염을 토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칭송받는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도 73세다. 투자의 귀재로 유명한 버핏은 요즘엔 기업 CEO들 사이에 조언자로 또 다른 명성을 얻고 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 제프리 이멜트와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 제록스의 CEO인 앤 멀캐히, 월트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 등 내로라 하는 미국 기업 수장들이 경영진에 대한 보상, 주주와의 관계 등 경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잇따라 버핏을 찾았다. 버핏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된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선거전에서 금융 및 경제 자문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헤지펀드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73)와 시티그룹의 샌디 웨일(70)회장도 잘 알려진 '70대 청춘'에 꼽힌다.

억만장자 투자가인 조시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다른 갑부들과 달리 전용비행기도, 카리브해의 섬도, 요트도, 서부의 목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해외 출장을 떠날 때도 혼자 다닌다. 고향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출장갈 때는 공원 주변의 평범한 호텔을 이용한다. 활기차게 산책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소로스는 요즘 뒤늦게 시작한 반정부 운동(?)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낙선이 보장된다면 전 재산도 내놓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소로스는 자신이 부시 낙선운동에 나선 이유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나의 열린 사회 철학에 정면 배치하는 패권주의 철학으로 세상을 위험한 상태로 이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적이 아니면 동지라는 부시의 연설은 내게 나치 독일을 연상시킨다"며 "2004년 대선은 삶이냐 죽음이냐의 문제와 같은 절박한 싸움"이라고 부시에 대한 독설을 퍼붓고 있다.

시티그룹의 샌디 웨일 회장은 지난 7월 오랫동안 자신을 보좌했던 찰스 프린스에게 CEO 자리를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웨일 회장은 2006년까지 회장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월가에서는 웨일이 CEO 자리를 심복에게 넘겼지만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면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미국 3위 항공사인 델타항공의 CEO에 오른 제리 그린스타인도 71세다. 전직 변호사인 그린스타인은 1987년 이후 16년 동안이나 이 회사 이사회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한때 재계 인사이기도 했던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도 71세다. 지난 11월 17일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고된 여행이었을 텐데 건강해 보인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말에 그는 "난 젊어요(I'm young)"라고 답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건전지 에너자이저를 떠올렸을 정도로 방한 중에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다. 아직도 미국 여성들 사이에 '최고의 섹스 심벌'로 꼽힐 정도다. 럼즈펠드는 43세 때인 75년 포드 행정부 시절에 미국 최연소 국방장관을 지냈으며, 대기업 경영자를 거친 뒤 다시 공직에서 봉사 중이다. 이밖에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77)도 70대 클럽에 속하는 유명인사다.

미국에서는 실적만 괜찮으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손성원(孫聖源.58)미 웰스파고 은행 수석부행장은 앞으로 수십년간 더 일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孫부행장은 "웰스파고 은행의 현 CEO도 20년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실적만 뒷받침된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오랫동안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재계에선 현직에서 활동하는 고령자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전경련 회장단 중 강신호(76.동아제약 회장)전경련 회장과 이용태(70)삼보컴퓨터 회장 등이 70대며, 이건희(61)삼성 회장.정몽구(65)현대자동차 회장.조석래(68)효성 회장.김승연(51)한화 회장.조양호(54)대한항공 회장 등 50대와 60대가 많다.

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