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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으로 스며드는 집시의 소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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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21면

2006년 4월 교보문고의 핫트랙스에서 근무하는 이혜원 과장은 생소한 이름의 연주자가 낸 앨범을 매장에서 틀었다. 이 과장은 “섬세한 바이올린 소리에 이끌려 틀어놨더니 ‘이 음악이 뭐냐’고 물으며 앨범을 사가는 사람이 하루에 수십 명씩 됐다”고 기억했다. 별다른 마케팅을 펼치지 않았던 이 앨범은 핫트랙스 클래식 부문에서 10주 동안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요제프 렌드바이 앙코르 내한공연

이 음반의 주인공이 요제프 렌드바이(Jozsef Lendvay)다. 앨범의 타이틀은 ‘집시 바이올린’. 그는 헝가리의 집시다. 헝가리는 집시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땅. 7대째 집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부다페스트의 가문에서 태어나 숙명처럼 악기를 잡은 사람이다. 애잔한 한(恨)의 정서가 음반 매장의 과객(過客)을 잡아끈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집시의 정서가 마음을 건드리는 동안 완벽한 기교와 완성도 높은 음악이 놀라움을 준다. 렌드바이는 부다페스트의 바르토크 음악학교와 리스트 음악원에서 정통 클래식을 공부했다. 헝가리 국립 교향악단에서 수석 자리에 앉았다. ‘티보 바가 콩쿠르’ 등 그가 석권한 대회들 또한 클래식 연주자들이 거쳐가고자 하는 코스다.

집시와 클래식. 이 두 가지가 렌드바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는 클래식을 집시 스타일로 해석하기도 하고 집시의 음악을 격조 있게 풀어내기도 한다. 헨델과 바흐를 연주하는가 하면, 헝가리의 전통악기와 함께 연주하기도 즐긴다. 경계에서 자유롭게 줄을 탄다.

음악 칼럼니스트 최은규씨는 렌드바이의 연주를 “바이올린보다 ‘깽깽이’에 가깝다. 정통 바이올린 주법으로 설명하기 힘든 소리가 난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그의 연주를 틀에 넣어 이해하기는 어렵다. 곱슬곱슬한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면도도 제대로 하지 않은 그가 바이올린으로 종달새 소리를 내며 씩 웃으면 그제서야 무릎을 치게 된다. 소리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는 “요즘에는 사람들이 많이 듣지 않는 집시 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전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역할”이라고 했다. 네 살 난 아들에게도 바이올린을 쥐여준 그가 이달 내한한다. 지난해 내한연주에서 뜨겁게 기립박수를 치며 ‘귀가 아닌 혈관 속으로 스며드는 뜨거움’(『그라모폰』)이라는 평에 공감했던 청중들의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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