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통계의 착시현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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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13면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도 “나는 내가 조작한 통계만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통계를 신봉한다. 숫자가 뿜어내는 마력이 보통 대단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올랐어!” 하면 감이 별로 오지 않다가도 “100% 올랐다”고 하면, 전후 사정 따질 것 없이 “엄청 올랐구나!” 그냥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흔히 똑

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통계 숫자를 인용하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범죄 역시 통계는 대단히 중요하고, 그것이 갖는 사회적 파급력 또한 크다. 범죄가 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혹은 줄었는지 개인적인 경험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어느 한 사람이 일주일에 강도를 세 번 당했다고 해서 그것을 곧 강도사건 발생률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죄는 ‘객관적’ 통계로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는 범죄통계를 주로 경찰과 검찰에서 발표한다. 경찰의 ‘경찰백서’나 ‘경찰통계연보’, 검찰의 ‘범죄분석’ 등이 주요 범죄통계 자료들이다. 범죄의 증감과 관련한 언론보도들도 대부분 이들 자료에 바탕을 둔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통계의 신뢰성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각종 범죄통계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검찰의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1993년 전체 범죄는 135만6914건이 발생했고, 2002년에는 197만7665건으로 증가했다. 10여 년 사이에 무려 46% 증가한 셈이다. 항상 뭔가 새롭고 눈에 띄는 경향과 자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언론이 이런 걸 놓칠 리 없었다. 당시 각 언론은 “국민은 불안하다!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보도를 쏟아냈다. 또 기다렸다는 듯이 수사기관의 인력 및 예산 증액의 필요성도 강하게 제기했다. 범죄통계를 분석해 정부 당국에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없다. 하지만 발표되는 이들 통계의 이면과 추이의 변화 배경 등을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치상으로 보면 범죄율이 증가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범죄 신고율을 고려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1993년 17.3%였던 범죄 신고율은 2002년에는 34.9%로 크게 늘었다. 국민의 신고의식 향상, 경찰·검찰 등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신뢰도 증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범죄 신고율이 2배 이상 증가했다. 범죄가 전혀 늘지 않았어도 신고율이 2배로 늘어나면 범죄 발생 건수는 100% 급증하는 결과를 낳는다.

즉 1993년에서 2002년까지 범죄가 4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범죄 신고율을 감안하면 실제는 감소했을 수도 있다. 법무부 산하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피해자 조사 결과도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범죄 피해가 1993년 255.3건에서 2002년에는 110건으로 절반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숫자를 해석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뿐이다.” 범죄 통계율과 관련된 분석 기사를 볼 때마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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