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로봇이야기

머리 나쁜 로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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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무대에 조명이 들어온다. 로봇이 유연한 동작으로 걸어나온다. 로봇이 관중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소개한다. 사람과 그럴듯하게 악수도 한다. 그리고 사회자의 물음에 여유 있게 대답한다. 관중은 로봇의 멋진 동작과 말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이는 각종 미디어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광경이 됐다. 일본.미국.한국 모두 비슷하다.

사실은 들은 척, 아는 척, 말하는 척, 생각하는 척, 느끼는 척, 한마디로 '척'하는 동작인데 관중은 시비를 걸지 않는다. 그러려니 하고 이미 이해한 걸까?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판단한 뒤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상황에 따라 로봇처럼 '척'하기도 한다. 그러나 로봇은 사람이 미리 입력한 대로 따라하면서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로봇이 '척'할 수밖에 없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그렇게밖에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봇 개발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능을 가진 인간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기 때문에 사람처럼 인식.판단.행동을 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이제까지 주변환경 인식을 위해 다양한 고성능 센서들이 개발됐다. 그리고 많은 로봇 공학자의 노력으로 그럴듯한 로봇의 외형, 유연한 행동과 말은 이미 익숙하여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문제는 판단 즉, 로봇의 IQ 인데 가장 뒤떨어진 기능 같다. 로봇의 핵심 기능임에도 진보가 가장 늦은 것이다.

필자는 이전에 장난감 강아지 로봇을 가지고 성능 시험 겸 놀았던 적이 있다. 머리를 똑똑 두드리면 화났다고 눈이 파란색으로 켜져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뿐 20분 정도 같이 놀다가 그 후로 다시 시간을 같이 보낸 적이 없다. 물론 배터리 문제도 있었지만 같이 놀 흥미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필자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데 주인에 대한 충성심 외에도 강아지의 움직임, 즉 강아지의 생각에 대해 항상 신선함을 느끼며 또 재미있다. 동료 교수에게 들은 얘기인데, 부인이 며칠 집을 비우자 남편(하필 직업이 교수였다)은 50만원을 주고 청소 로봇을 사 며칠간 재미있게 놀았다. 나중에 아내가 딸에게 물으니 아빠는 엄마를 찾지도 않고 청소 로봇과 재미있게 지냈다고 일렀다는 얘기다. 참 무던한 성격이다. 그래도 여기저기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청소 로봇의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을 로봇의 지능으로 보고 즐겼을 것 같다. 모두 로봇의 판단 지능이 낮으면 재미없다는 얘기다.

로봇의 지능이 높을수록 수요는 급격히 커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로봇 지능은 얼마나 높을까? 솔직한 표현으로 왜 다른 기능과 달리 로봇의 지능은 발전하지 못했을까? 쉽게 말해 어렵기 때문이다. 뇌신경정보학 사업을 맡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수영 교수는 "인간의 두뇌 계산속도가 컴퓨터 칩보다 훨씬 빠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뇌기능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발전이 더딘 또 다른 이유는 그동안 로봇 개발사업이 많이 있었지만 로봇 인식과 행동 분야에 집중하고 판단은 '척'만 하고 안 한 점이다. 또 로봇 지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타 분야 사람들에게 맡겼지만 그들이 열심히 연구하도록 지원은 없었다.

수요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강한 원동력이다. 휴대전화의 개발 속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언젠가 잘 기획한 지능 높은 로봇이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리면서 치열한 로봇 IQ 경쟁단계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을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다. 이제 로봇 지능에 관심을 가질 단계에 와 있다. 이제까지 로봇은 두뇌 없이 그냥 '척'만 했는데 앞으로 관중은 로봇 지능을 따지고 비판도 하여 지능 수준을 올려야 한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나름대로 그럴듯한 판단 지능을 가져 간혹 진짜 사람처럼 '척'하기도 하는 시대를 위하여.

박종오 전남대 교수·기계시스템공학부